살다보니 사람의 일이 생각한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듯합니다. 종종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스스로 헛발질을 하는 적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7월도 그랬습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 길이었습니다. 어두운 골목에서 발밑을 잘 살피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어찌 할 수도 없는 짧은 순간, 공사로 파헤쳐놓은 땅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새끼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이 일로 석 달 가까이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당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밥을 벌던 제게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결국 지난 오월, 그 일을 접고 완벽한 무적자(無籍者)가 되었습니다. 건강보험공단 사무실을 찾아가 직장 건강보험을 지역보험으로 전환하면서는 참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줄일 것은 줄이자 / 아까울 것은 없다 자를 것은 자르자 / 어둡고 먼 길을 떠나야 하니까 / 다가오는 어둠 끝내 밝지 않으리라 / 생쥐들 설치는 것쯤 거들떠도 볼 것 없다 / 불어닥칠 눈보라와 비바람 이겨내자면 / 겉에 걸친 것 붙은 것 몽땅 떨쳐버려야지 / 간편한 맨몸으로만 꺾이지도 지치지도 않고 / 먼 길 끝까지 갈 수 있지 않겠느냐 / 다 버리고 가지와 몸통만이 남거든 / 그래 나서자 젊은 나무들아 / 오직 맨몸으로 단단한 맨몸으로 / 외롭고 험한 밤길을 가기 위해서
-신경림, 「먼 길-가을 숲에서」,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 1993.
일도 끊기고 당장 갈 곳도 없으니 한동안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평일 대낮의 지하철이 그렇게 붐비는 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박물관으로, 고궁을 거쳐 책방, 미술관으로, 다시 도서관으로 그렇게 흘러 다녔습니다. 거리는 활기찼지만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불면과 분노와 괴로움과 좌절의 밤을 보냈지만 결국 그 시간도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오십 플러스입니다. 50+필진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글을 연재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동안 오십 플러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당장 컴퓨터를 켜고 여러 곳의 50플러스 캠퍼스와 센터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강의도 듣고 새로운 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고보니 그간 수강한 강좌가 '시민기자 되기', '고대 중국의 큰 선생들', '실전 문장력', '글이음 교실', '노르딕워킹 교실',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강사역량강화교실', '독립영화', '인생학교' 등등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까지 됐습니다.
그러다 이곳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0+캠퍼스의 'N개의 교실', 센터의 '열린 교육', '자유학교' 등이 그것이지요. 같이 시낭송 수업을 들었던 고마운 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남부캠퍼스 N개의 교실에 <내 생에 시 한 편>이라는 제목으로 시 강의를 지원하게 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시 강의를 개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시인 백석은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고 썼습니다만, 지금 이 땅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는' 여러분과 같이 시를 읽으며 지난 우리들의 시대를 되돌아보고 서로의 아픔 상처 같은 것들도 보듬어 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 것이지요.
박형, / 잘 살고 있는 거냐고, 물으셨지요? / 죽네사네 하면서 죽진 못하고 삽니다 죽어라죽어라 삽니다 이 달에도 쥐꼬리 월급 받았지만 이것저것 빼고 나니 빚만 50만원입디다 // 출판사는 아직 안 망했냐고, 그래도 용케 버티고 있는 거냐고 물으셨지요? / 은행에서는 더 이상 대출은 어렵다며 나를 조지시고, 저자들은 왜 2쇄를 찍지 않느냐며 또 나를 조지시고, 그러면 나는 술을 조집니다 내가 술을 먹다가 술이 술을 먹다가 마침내 술이 나를 먹어치울 때까지 술을 조집니다 술이 쓰다가 달다가 마침내는 아무 맛도 없습디다 // 요즘은 왜 시를 발표하지 않느냐고, 시를 더 이상 쓰지 않을 거냐고 물으셨지요? / 먹고사는 일이, 직원들 월급 주는 일이, 시보다 급한 일이라 말하면 변명이겠지만, 그래도 그리 말하면 속이 좀 편해집디다 실은, 시 같은 시를 쓰겠다고 삼십 년 매달렸는데 이제는 시 같지 않은 시를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시기 빠지게 살아보니 시가 별 것 아닙디다 // 바람이 많이 차갑습니다 / 내내 여일하시길
-박제영 「근황」 전부, 네이버블로그 『장미여관 김씨』 2019.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것과 시를 강의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인이라고는 하지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누구 앞에서 시에 대한 강의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내 생에 시 한 편>이라는 제목으로 강의 신청을 해놓고 그것을 준비하는 내내 그렇게 떨렸던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4주 동안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덕분에 뜨거웠던 올 여름 7월과 8월을 잘 넘겼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오십 플러스 여러분과의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바탕으로 10월에는 영등포에서 <내가 만난 시 내가 사랑한 시>를 제목으로 6주간 강의를 할 수 있었으니 이만한 행복도 없다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11월입니다. 새로 온 11월은 지난해의 것도 아니고 지지난해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 생에 처음 맞는 11월인 것이지요.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그 첫날입니다. 그러니까 어제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 시월 마지막 날에 노원50플러스센터에서 첫 강의를 했습니다. <시가 흐르는 교실> 6강 중 1강이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오후, 바람은 차가웠지만 시가 흐르는 교실은 어느 곳보다 따뜻했습니다. 시에 대한 애정을 앞세워 교실을 찾아준 여러분들이 계신 덕분이지요. 앞으로 바람은 더욱 차가워지겠지만 <시가 흐르는 교실>에서 올 11월이 내내 따뜻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