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기행
-
※ 50+시민기자단이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며 작성한 기행문입니다
나가사키하면 짬뽕, 카스테라, 원자폭탄이 떠오른다. 어떤 곳인가 궁금해 잘 아는 친구와 같이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나가사키시는 일본 남쪽 규슈 나가사키현에 있다. 인천공항에서 1시간 걸린다.
여행 컨셉을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역사교훈여행’으로 정했다. 이런 여행의 대표적인 장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던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평화공원을 시작으로 오우라 성당, 글로버 가든, 데지마, 안경다리, 공원, 글로버 가든, 해변 온천 등을 둘러보았다.
평화 공원
평화공원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 피해를 본 곳이다. 히로시마에 비해 작고 남쪽 변두리에 위치한 나가사키가 원폭을 맞은 이유는 미쓰비시 조선소 때문이다. 미국이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군수물자를 만드는 미쓰비시 조선소를 폭격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역경제의 터전인 조선소가 원폭의 피해를 초래하다니, 역설적이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7만 5천 명이 사망했다. 공원과 자료관의 시계는 11시 2분에 멈춰져 있다.
평화 기념상
일본은 다시는 전쟁의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는 염원으로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원폭 피해자 명단과 유물과 사진이 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다. 참상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료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웅장한 규모의 평화 기념상이 눈에 띄었다. 바람대로 평화가 계속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원자폭탄 피해만 강조하고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데지마
데지마와 글로버 가든
나가사키는 오래전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그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있지만, 데지마와 글로버 가든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데지마(出島)는 외국 배가 오가던 항구를 기념하여 만든 인공항구이다. 네덜란드의 건물과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네덜란드가 전한 서양문명이 난학(蘭學)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다. 근처 공원에 사카모토 료마 동상이 있다. 근대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다 암살당한 비운의 정치인이다. 난학과 이런 선각자의 존재가 메이지유신의 기반이 되었다고 여겨졌다.
사카모토 료마 동상
글로버 가든
나가사키에 방문하면 글로버 가든에 꼭 들린다. 스코틀랜드 출신 토마스 글로버가 살던 집을 나가사키 정부가 사들이어 관광 명소화 한 곳이다. 그 당시 먼 일본 나가사키까지 와서 무역하고, 일본 개화에 도움을 준 토마스 글로버가 대단하게 느껴져 탄성이 나온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이국적 풍경의 건물과 식물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바다와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이는 곳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개방적이어서 국제결혼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우라 성당
전통과 진보의 조화
나가사키는 쇄국을 고집하던 에도시대의 유일한 개항지였다. 외래문화를 흡수하여 나가사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오우라 성당은 가장 오래된 천주교 건물로, 일본의 국보이자 2018년에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유료라 들어가지 않고 앞에서 사진만 찍었다. 일본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건물과 유물을 잘 보존하여 관광상품으로 쓰는 재주가 좋다는 걸 안경다리를 보며 실감했다. 가 보면 별것 없는데 관광객은 누구나 와 보는 관광명소이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주변 공원과 거리 풍경이 깨끗하고 아기자기하다.
안경다리
나가사키 짬뽕과 카스테라 이름이 곳곳에 보인다. 나가사키 짬뽕은 일본과 중국의 식문화가 합쳐져 개발된 요리이다. 1899년에 중국의 푸지앤성에서 일본의 나가사키로 이주한 천핑순이 개발한 요리이다. 해산물과 죽순, 버섯 등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카스테라는 포르투갈 상인이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한 카스테라 가게로는 분메에도, 쇼오켄, 후쿠사야가 있다.
온천 앞에서
음식점은 예약이 없으면 입장이 안 될 정도로 예약문화가 잘 정립되어 있었다. 이자카야와 스시집에서 저렴한 회와 사케를 즐겼다. 그 후, 근처 섬에 있는 온천에서 여행피로를 풀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온천물로 활용하는 곳에서 바다를 보며 온천욕을 즐겼다.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곳저곳 느끼면서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