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포털 필진 이현신님이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며 작성한 글입니다.
해발 4,000m인 알티 플라노 고원에 위치한 라구나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아르볼 데 피에드라(Árbol de piedra)가 있다. 직역하면 바위조각 나무다. 바닥에 나뒹구는 돌과 원래 하나였는데 벼락을 맞았거나, 하여간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부서진 모양이다. 엄청나게 큰 바위가 왜 달랑 하나만 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사진 속의 사람과 크기를 비교해 보라. 멀리 설산이 보이고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른데 부서진 몸으로 간신히 서 있는 바위가 위태롭다.
엄청나게 큰 나무 형상의 바위
공원의 하이라이트는 ‘라구나 콜로라다’다. 스페인어로 라구나는 호수, 콜로라다는 붉다는 뜻이다. 해발 4,100m에 위치한 호수는 활화산의 화산활동으로 침전된 마그네슘 등의 광물 때문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색을 띤다. 전체적인 색은 붉지만 부분적으로는 흰색, 코발트색, 연두색 등 다양한 빛깔을 띠고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물빛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호수 기슭의 하얀색에는 소금, 마그네슘, 붕사, 석고 등이 섞여 있고, 호수 바닥에는 규조와 같은 화학성분이 있다고 한다.
붉은 호수 라구나 콜로라다
라구나 콜로라다에는 플라밍고가 무리 지어 산다. 플라밍고를 자세히 찍고 싶다면 망원렌즈를 준비하는 게 좋다. 가까이 가서 찍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솔자가 점심 도시락으로 플라밍고 샌드위치를 주문하면서 우리에게 별미를 먹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녀가 플라밍고 샌드위치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맛있다고 했고 몇몇 사람은 닭고기와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플라밍고라는 닭 품종이 있다며 웃었다. 에이, 닭이었구나, 속았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야 잉카시대 이전부터 살던 치파이족이 노끈에 돌을 매달아 던지는 돌팔매질로 여전히 날아가는 플라밍고를 사냥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먹은 샌드위치가 진짜 플라밍고 샌드위치였는지도 모른다. 사진 속 푸른 곳도 붉은 곳도 모두 호수다.
콜로라다 호수의 플라밍고 무리
해발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엄청나게 거셌다. 나무가 없으니 보기에는 바람 한 점 없는 것 같은데 사진을 찍는 동안 자세를 바꿀 수 없을 정도였다. 조금만 무게 중심이 흩어져도 종이처럼 날아가 버릴 거 같아서 두려웠다. 인근에 라구나 혼다, 라구나 카나파, 라구나 베르데 등 여러 호수가 있다. 라구나 베르데는 녹색 호수라는 뜻인데 라구나 콜로라다와 달리 소금호수다. 물속에 비소, 납, 구리 등의 광물이 있어서 녹색을 띠며 해발 4,400m에 위치하고 있어 천상의 호수라 불린다. 만년설이 쌓인 설산과 투명한 호수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며칠 전 비가 왔기에 눈이 많이 쌓였다고 한다. 날씨 덕을 또 본 셈이다.
라구나 베르데
도로를 달리다 보면 떼 지어 달리는 구아나코를 만나기도 한다. 구아나코는 시속 55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고 수영을 잘하며 라마처럼 온순해 길들이기 쉽다. 그러나 화나게 하거나 공격을 받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침을 뱉는다. 고약한 침을 뱉는 것으로 보아 낙타의 일종이 틀림없다. 생후 3~4개월 된 새끼의 털로 코트를 만드는데 실크 같은 광택이 난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 질주하는 구아나코 무리
해발 3,950m인 아타카마 사막은 용암이 만든 고원인데 암염과 간헐천이 많이 분포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른 지역 중의 하나로 면적은 105,000 km²이며(대한민국보다 넓다) 메마른 땅이 1,217㎞나 뻗어 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850km 남짓 되니 얼마나 광활한지 상상해 보시기를! 연간 강우량이 0.01㎝ 이하이며, 40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한다. 미생물도 없어서 몇천 년 전에 죽은 동물과 식물의 미이라가 원형 그대로 심심찮게 발견된다. 콧수염이 요상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의 배경이 된 사막이 이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살바도르 달리 데저트라 불리는 장소가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기괴한 형상의 바위가 많다.
풍화작용이 낳은 멋진 조형물
불모의 사막이지만 초석 광산이 있어서 칠레·볼리비아·페루 사이에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883년 앙콘 조약의 체결로 칠레는 페루와 볼리비아가 통치하던 지역의 소유권을 영구적으로 차지했다. 이때부터 볼리비아는 내륙에 갇히게 되었고 해상 교역을 할 수 없어 경제가 침체되었다. 역대 볼리비아 대통령들이 수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지금도 태평양에 면한 해안지역을 되찾지 못했다.
잠시 쉬어가는 길목에서 신기한 식물을 보았다. 얼핏 보면 이끼 같지만 야레타라고 불리는 관목이다. 1년에 1cm정도 자라는데 3,000살 이상 되는 야레타도 있다고 한다. 가지는 철수세미처럼 얽혀 있고 끝에 푸른 잎이 조밀하게 붙어 있다. 조금 떼어내 향을 맡으니 송진 냄새가 났다. 사진 속의 야레타는 몇 살이나 될지 계산해 보시기를……. 가혹한 환경을 극복한 나무에 경외감을 느끼게 될 테니.
송진 냄새가 나는 신비한 나무 야레타
아타카마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다. 상당히 커서 호텔과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와 자전거 대여소와 여행사가 있고 버스터미널도 있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라는 마을 이름은 ‘아타카마의 성인 베드로’라는 뜻이다. 해발 2,440m에 위치한 오아시스로 물이 귀한 곳이기 때문에 숙소에서 빨래를 하면 안 된다. 햇볕은 몹시 따갑지만 그늘에 있으면 견딜 만하다. 이곳에도 달의 계곡이 있다. 젊은이들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달의 계곡으로 간다. 마을의 광장에 서면 만년설을 이고 있는 해발 5,920m의 리칸카부르 화산이 보인다. 남미 문학이 왜 환상적인지, 살바도르 달리가 왜 흐느적거리는 시계를 그렸는지 아타카마 사막에 와 보면 알 수 있다. 광대하고 장구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미세 먼지 하나도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맞고 보니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새삼 느낀다. 한반도의 절반이나 되는 아타카마 사막의 붉은 바위와 설산 앞에서 어찌 겸손해지지 않겠는가.
설산과 오아시스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