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부시- 미국을 울린 아름다운 봉사의 삶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모친이기도 했던 바버라 부시(1925-2018) 여사의 장례식이 지난 4월21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치러졌다.
생전에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영부인이었던 만큼 모두가 그녀의 죽음에 아쉬워했던 것은 생전에 그녀가 보여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일관한 삶
때문이다.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생전의 바버라 부시 여사>
그녀는 특히 성실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의 실현을 위해 성인 문맹과 가족문맹 퇴치운동에 평생을 진력해 왔다. 부모는 어린애들 생애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스승이므로, 성인가족의 문맹을 없애는 일 이야말로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의 출발점이라는 자기 확신 아래, 자신의 저술 원고료 수입 등을 털어 1989년 가족문맹퇴치재단을 설립하고
, 미국사회를 ‘문맹’의 대물림이 없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해왔다.
그녀가 가족문맹 퇴치운동에 전념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셋째 아들 닐이 어렸을 때 난독증으로 읽기 장애 진단을 받고, 이를 치료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영부인이 된 바버라 부시는 모든 성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가 문맹퇴치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사명 아래 재단의 가족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노숙자, 마약, 범죄 등 미국 내 만연하고 있는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당사자의 ‘무지와 문맹’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또한 전국적 라디오프로그램인 ‘영부인과의 대화’등에 출연, 어린이들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강조함으로써 독서문제를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시켰다. 이 같은 노력 끝에 1991년에는 문맹퇴치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문맹퇴치를 책임 맡은 국가기관이 설립되고, 미국 내 지역도서관이나 행정관청건물들을 야간 성인교육장소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백악관을 떠난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자원봉사활동은 인생2막이라 할 수 있는 은퇴생활 중에 더욱 활발해졌다. 2014년 가족문맹퇴치기금의 대표직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그녀의 재단 조직은 미국 전역의 50개주와 워싱턴 D.C.로 확대되었고, 해마다 5천만 달러 이상의 기금으로 가족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교육 참여자도 수백만 명에 달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세계 곳곳에서 재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긴급구호봉사단체인 아메리케어스 순회대사로 활동했으며, 빈민무료치료 자선단체인 메이요 클리닉 재단의 운영이사직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내 백혈병환자 지원단체인 미국 백혈병 협회, 불치병어린이환자 지원단체인 로널드 맥도널드 하우스, 불우 청소년 기술교육단체인 보이즈 & 걸즈 클럽 오브 아메리카 등 사회봉사단체의 유력한 후원자였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성 마틴 교회에서 열린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
1925년 6월 8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폴린에서 명문가의 상속녀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한 바버라는 그곳에서 73년 천생배필인 조지 부시를 만나 1945년에 결혼한 후 4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 3살때 백혈병으로 죽은 딸 로빈을 못 잊어 1995년 포트랜드에 자선병원 바버라 부시 어린이병원을 세워, 연간 10만 명 이상의 소아암 등 어린이환자들을 치료해 왔다, 마침내 그녀는 평생 가슴속으로 애통해했던 딸 로빈이 묻혀있는 텍사스A&M대학교 내 조지 부시 기념도서관 부지에 있는 가족묘역에서 영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