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존재한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처음이라는 것과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이 아닐까. 전쟁 중이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던, 도저히 사랑 따위는 꿈도 못 꿀 것 같은 참혹한 시절의 애틋했던 첫사랑은 그래서 더 아슬아슬하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사진 출처 : 알라딘)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은 성북구 돈암동 안감천변이 배경이다. 노인이 된 화자는 후배의 집들이에 초대되어 찾은 동네에서 오십 년 전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는 가볍고, 세련되고, 없는 것 없고, 활기가 넘치는 대학촌으로 변해 버린 돈암동을 눈으로 톺아본다. 그녀는 머릿속 지도를 관통하고 있던 안감내를 찾는다. 주변이 너무 많이 변해서 두리번거린다. 그 남자네 집 찾기는 허사인가. 아니다. 고맙게도 개천 다음으로 표적이 될 만한 성북경찰서가 눈앞에 들어온다.
성북경찰서
돈암동 성당
그 남자네 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남자네 집은 천주교당 뒤쪽, 성북경찰서 옆 양회다리로 통하는 큰 한길 가에 있었다. (중략) 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서 홀로 초연히 그 남자네 집은 그냥 조선 기와집으로 남아 있었다. (중략) 그 남자네 집은 해마다 손을 봐준 것처럼 기와 골의 선이 가지런하고 윤기가 흘렀다. 그러나 바깥마당에 너무 빽빽하게 나무를 심어 홍예문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은 암만해도 섭섭했다.(중략) 이 나무들은 얼마나 있어야 그 밑에서 단 꿈을 꿀만큼 자랄까. 한 오십 년쯤, 나는 보리수나무가 세월을 먹어 오십년 전엔 그 무성한 그늘에서 관옥같이 아름다운 청년이 단꿈을 꾼 것 같은 착란에 빠졌다.
P. 24~28
어릴 때 안감내에서 같이 살았던 그 남자를 다시 만난 것은 전쟁 중이었을 때였다. 전선은 서울 북쪽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고 피난 못 간 서울에는 가난뱅이와 아녀자들만 남아있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미군부대로 일을 다니던 그녀가 어느 날 겨울 저녁 퇴근하는 전차에서 우연히 그 남자를 만나 서로 집안의 안부를 물으며 두 사람은 빛나고 행복한 겨울을 시작했다. 먼 친척뻘이 되는 그 남자는 다짜고짜 누나라고 불렀고, 그 호칭은 그녀를 마음을 놓이게도 했고 섭섭하게도 했다. 홍예문이 달린 기와집에 사는 몰락하는 집안의 막내아들이자, 상이군인이자,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던 청년 현보는 그녀에게는 웬 떡이었음으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생존만이 가치 있던 시절에 남자의 문학과 음악과 낭만 그리고 사랑은 빛이 났고 그 자체로 사치스러웠다.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 애인한테보다 막내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눈물, 구슬 같은 이슬, 구슬 같은 물결……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P.38
이사하고 나서 조성한 정원이어서 그 남자도 이렇게 꽃이 잘 핀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런 꽃을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거렸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돈이 안 드는 사치는 이렇게 위험했다. (중략) 만일 그 남자를 못 만났더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넘겼을까. 그 살벌했던 날, 포성이 지척에서 들리는 최전방 도시, 시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도시, 버림받은 사람만이 지키던 헐벗은 도시를 그 남자는 풍선에 띄우듯이 가볍고 어질어질하게 들어올렸다. 그것은 황홀한 현기증이었다.
P.53~70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무엇일까. 연애할 때는 사랑 하나만 믿고 만날 수 있겠지만, 결혼은 상대방의 조건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젊은이들 보다 더 현실적인 그녀의 선택에 당황스럽다. 그것은 아마도 시대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첫사랑을, 그녀는 불가항력이었다는 변명으로 스스로에게 합리화하며 그 남자를 두고 떠난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그녀는 하루하루가 불안한 그 남자보다 좀 더 안정되고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알콩달콩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던 거다. 그 남자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가진 남자. 휴전이 된 이듬해 봄 아직 궁기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 당시에 보기 드문 파격적이고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린다. 더 놀라운 것은 결혼 비용을 신랑이 몽땅 지불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씁쓸했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비자발적 ‘비혼’을 선언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삶이든 단순하지 않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며 합리적이고 다소 속물스런 판단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비난을 할 자신이 없다. 다만 안타까움만 불안하게 파드닥거린다.
성북천(안감내)
소설≪그 남자네 집≫은 첫사랑이라는 아련한 이야기와 대비를 이루며 전후 피폐한 일상과 생활전선을 직접 몸으로 겪어야 했던 여성들의 실상을 가슴 찡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느닷없이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버린 누나와 언니들이 있어 다행스럽게도 삶은 이어진다. 춘희처럼 양색시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그녀의 남편이 도와줘서 친정 올케는 동대문에서 옷감 장수를 시작한다. 전쟁 중에 남편이 행방불명된 생과부들, 몸만 피난 온 월남가족들이야기가 첫사랑 이야기 사이사이에 배어들면서 재미는 물론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중심서사에서 벗어나는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살이 또한, 양념처럼 곁들어져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그 남자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문병을 간다. 그녀가 첫사랑이었다는 그 남자의 고백을 누나를 통해 듣는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 남자의 전체, 보이는 상처와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느끼게 된다. 친정 엄마를 통해 그 남자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언제 헐릴지 모르는 친정집에서 그녀는 남자를 기다린다.
그 남자가 정각에 나타났다. 엄마한테 들은 대로였다. 하나도 안 변했다. 조금도 늙지 않았다. 청계천변을 같이 헤매던 시절보다도 더 전, 전쟁 중 폐허의 서울에서 만난 상이군인 시절의 아름답고 우수어린 청년 모습 그대로, 앞이 안 보인다는 걸 전혀 눈치 챌 수 없도록 뚜벅뚜벅 늠름하게 걸어 들어왔다. (중략) 오래간 만이야. 하나도 안 변했어. 그 남자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가 있지도 않은 포탄 자국을 바라본 것처럼 지금은 있지도 않은 구슬 같은 처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자라지 않은 남자를 어찌할 것인가. 퇴행하여 소년이 된 그 남자와 내가 비교가 되었다. 나는 한해 걸러 아이를 넷이나 낳는 동안 체중이 6킬로나 늘어난 여편네가 되었다. 그 남자는 시력을 잃었고 나는 귀여움을 잃었다. 나의 첫사랑은 이렇게 작살이 났다.
P.286~287
어느 날, 신문 부고 난에서 그 남자의 부음을 알게 되었다. 생전에 장애인 복지에 힘을 쏟은 그의 미담은 따로 박스기사로 실렸다. 그 남자의 죽음 앞에 그녀의 태도는 말라버린 꽃처럼 건조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났단 말인가. 그의 어머니 문상 갔을 때 본 그 남자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하며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도 애끓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안았다. 그 남자도 무너지듯이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P.310
안감내 하늘다리
≪그 남자네 집≫은 한 개인의 문제를 통해 그 시대를 해석하고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돈암동 ‘안감내’라는 동네를 그녀의 기억을 따라 빠짐없이 복원한다. 아무리 남루하고 척박한 시대에도 사랑은 존재했다는 것을, 때로는 누추한 삶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힘도 사랑이었다고 믿고 싶다. 바람 한 점 불어도 들켜버릴 기억이지만, 애면글면 놓친 첫사랑을 한번쯤 불러보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