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란 상대를 알고 이해하거나, 상대가 느끼는 상황이나 기분을 비슷하게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뜻한다. 따라서 이는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기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공유하는 것에 가깝다. 이 공감능력이야말로 비단 중장년층 뿐 아니라 전 연령층에 있어 타인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 상대의 기분과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면 두 사람사이의 관계는 현재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며 친밀한 관계 맺음은 불가능해진다. 관계 맺기의 전제가 되는 공감의 핵심은 첫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내가 공감하고 있음을 표현하라’이다.
 

공감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상대의 감정이나 기분 같은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매우 쉬운 일 같지만 생각보다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많은 경우 상대의 감정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정이 기쁨인지 놀라움임지 분노인지 불안인지 그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내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더구나 중장년층의 경우 이러한 공감에 자신의 경험이 결합되게 되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상기하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느꼈던 과거 감정을 소환하게 된다. 상대에 대해 적용하여 상대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감정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어떤 부정적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거나 걱정했던 것만큼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내가 경험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하면서 상대의 부정적 감정을 애써 축소해버리면 이러한 해소를 경험하지 못한 상대는 서운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신의 경험이라는 것이 시대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동일한 경험도 동일한 감정으로 다가올 수 없음에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상대의 감정을 규정짓는 것은 결코 공감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공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의 감정을 정확하게 느껴야 하고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유사한 경험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소환하는 일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 취업이 코로나19로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취업 선택을 경험한 내가 어떻게 지금 청년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추운 겨울 동상에 걸리고 구타를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했던 시절 군대를 보낸 사람에게는 지금의 군대가 ‘유치원’ 같겠지만 단 한 번도 개인의 자유가 구속당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아들 세대에게는 획일적인 단체생활을 한다는 것이 두려움일 수 있다. 감정들은 그냥 그대로 인정해주면 되는 일이다. 상대가 외롭고 힘들다는데 ‘에이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살다보면 더 힘든 일은 얼마든지 있을텐데. 괜찮아. 털어버려’ 라는 이야기는 결코 공감이 아니다. 상대의 감정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면 나의 과거 감정을 기준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함을 받아들여야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이 그대로 공유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가 하는 것은 결코 정량적으로 줄을 세우거나 그 강도를 비교하기 힘든 것이다. 내가 경험한 A의 일에 비하면 지금 너의 B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비교는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10만큼 힘들다는 혹은 5만큼 기쁘다는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지닌 기준에 비추어 감정의 강도를 서열화하는 것은 공감의 최대 적이 된다.

 

이제 공감했으면 이 공감을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언어와 비언어로 표현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힘들어 하는 상대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손잡아주고 어깨를 다독여주는 기뻐하는 상대에게 함박웃음으로 함께 공감해주는 비언어적인 표현들이 필요하다. 또한 무엇보다 내가 공감하고 있음을 언어로서 표현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상대의 감정 그대로 ‘힘들겠구나’, ‘참 기뻤겠네’ ‘속상하구나’ 식의 상대 감정을 그대로 나의 언어로 상대에게 돌려줌으로써 내가 상대를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 언어를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판단‘ 그리고 ’조언‘의 언어를 혼용하지 않는 일이다. 속상하다고 말하는 상대에게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잖아.‘라는 것은 판단이지 상대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 아니다. 경험이 많은 중장년층의 경우 감정표현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도움을 주려고 하는 ’조언의 성향‘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 자신의 존재를 유의미하게 남기고 싶고, 타인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기에 기꺼이 누군가에게 조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조언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원할 때만 해야 한다. 사람이 달라지고 상황이 달라지고 시간이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진 상황에서 나의 경험은 ‘그때에만 유효했던’ 유통기한이 지난 성공경험일 가능성이 크다. 섣부른 조언은 공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은퇴 후 많은 남성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와의 대화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표현의 언어로 대화하는 아내에게 단답형의 대답으로 흐름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나한테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이유를 고민하고 답을 주려 하는 경우라면 대부분 이 공감장애에 해당된다. 대화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 많은 경우 공감만으로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시소를 같이 타자는 것은 친구와 함께 서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는 것이지 시소 타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서로 반대편에 자리 잡고 교대로 발 구르기를 하면서 너 한번 나 한번 재미있게 오르락내리락 하자는 것이다. 서로의 감정을 한 번씩 알아주면 충분한 일이다. 공감의 표현이란 그냥 상대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감정을 그대로 알고 있다고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중장년 이후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공감하라. 그리고 공감을 표현하라. 단 조언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