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F코드는 무엇을 의미할까.
얼마 전 KBS명견만리에서 <F코드의 역설>이란 제목으로 마음질환을 앓는 사람의 다양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F코드’는 정신과의 질환코드로 WHO에서 정한 정신질환 국제질병분류이다.
한국에서는 이 ‘F코드’로 인해 단 한 번의 약물 처방 기록만 있어도 5년간 보험가입이 힘들다.
수면제 처방을 받아도 F코드다.
F코드관련 질병은 낫기 힘들고, 잠재성만 있어도 다른 질병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면 정신질환자는 예비범죄자로 낙인찍힌다.
40분에 1명, 하루 36명의 자살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2003년 이후 OECD국가 자살률 1위의 자리는 한 번도 다른 나라에 내어주지 않았다.
한국인 4명중 1명은 정신질환의 한 가지를 경험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의료보험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치료도 5명 중 1명밖에 받지 않는다. 즉, 80%가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각종 편견으로 정신질환 초기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정신과 진료를 꺼리는 사람을 위해 2013년부터 정신과 상담 시 기존의 ‘F코드’(정신과질환) 대신
질환명을 넣지 않는 ‘Z코드’(보건일반상담) 제도를 마련했지만, 실효성이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습관 및 충동장애'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15년 5,390명, 2016년 5,920명, 2017년 5,986명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17년은 남자가 전체의 83%인 4천939명으로 압도적이다.
습관 및 충동장애는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자극을 조절 못해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으로 대표적으로 분노조절장애를 들 수 있다.
충동으로 인한 긴장 해소를 위해 폭력적 행동반복, 지나친 의심, 공격성, 폭발성 때문에 타인과 관계가 힘들어진다.
심해지면 교감신경이 조절되지 않아 합리적인 생각과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질병은 단순히 나쁜 성격과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진료가 필요한 질환임을 인지하고 비난하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한국은 유달리 성공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명문대진학, 아파트 마련 등을 위해 대다수가 우울증에 빠져있다.
사회복지제도가 많이 개선되었다 해도 여전히 열악한 상태다.
실업률은 높고 사회안전망은 작동되지 않는다.
<세월호>사건 이후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선박 사고의 위험이나 화재의 위험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는 "한국은 기적을 얻은 나라이나 기쁨을 잃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짧은 기간 눈부신 성장을 하며 OECD국가 8위의 자리에 올랐지만 사회통합순위는 29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인은 여전히 고달픈 산업화와 현대화를 통한 성공신화와 워크홀릭에 빠져 병들어 있다.
좌절과 박탈감은 점점 정신적 이상을 낳고, 그것을 개인 탓으로만 돌려왔다.
제도적 보완장치 없는 사회에서 멘탈이 약하다는 편견과 악순환은 되풀이 된다.
IMF와 각종 경제 위기, 세월호 침몰, 정치 불안정 등을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과도한 긴장과 우울, 불안 등으로 병들어 있다.
아무도 나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좌절이 반복되면 학습된 무기력을 낳는다.
이런 한국사회를 혹자는 "터지기 직전의 압력밥솥"이라한다.
이와 반대로 국가차원에서 개인의 마음을 챙기는 나라가 있다.
영국은 약 900만 명의 정신적 고통을 앓는 국민을 위해 <외로움장관>을 따로 임명했다.
이것은 개인의 외로움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1983년 한 정치인의 고백으로 국민에게 큰 파장을 준 사건이 있었다.
서호주 총리인 블레어제프 갤럽은 청소년기부터 앓아 온 우울증으로 견디기 힘든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고 사임을 선언했다.
국민들은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위로를 받았다.
블레어제프는 이후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게 하여 직면케 하는 건강자문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로 인해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은 가장 혁신적 정신건강지원을 하게 된다.
조기정신건강 예방센터의 운영으로 청소년자살률이 50%나 내려갔다.
<정신건강 응급처치센터>는 지역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멜버른 대학 재학생 40%가
친구의 우울, 불안, 약물남용 등에 대한 초기대응방법을 배운다.
친구의 비판 않고 들어주기와 전문가의 도움이 병행된다.
이런 교육을 20만 명이나 받았고 25개국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우울이나 불안의 가장 큰 문제는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열고 이야기하는 것이 치료의 첫 관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작은 변화가 불기 시작했다.
이경규씨 등 방송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의 병을 드러내고 아픈 삶을 공표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문제로 경험을 나누고 관계 맺는 것은 전문가보다 더 실질적 도움이 될 수도있다.
정신질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뒷받침이 있을 때 치료가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사회 곳곳에 <그때그때 마음충전소>를 제안하고 싶다.
자신만의 고통이라 생각하는 것, 잊히지 않는 고통, 의미 없는 삶에 대한 고민 등 삶의 길목에 있는 피해갈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사는 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노력하고 애쓰는 당사자는 그나마 건강하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다는 증거다.
뭔가 해주기보다 그때그때 비판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만으로 도움 된다.
이제는 사회공동체로 돌아가 사람에게 집중해야한다.
감추려 하지 말고 나의 문제를 드러내고 포용해주는 사회,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구나’라고 위로 받는 사회, 쌓이고 폭발하기 전 비판 않고 들어주며 위로하는 사회를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