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물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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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천을 따라 흘러간 옛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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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코 지나는 길 밑으로 여러 갈래의 물길들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물길이 개발의 명분 속에 숱한 이야깃거리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산(山)은 그래도 세월의 흔적을 지니며 의구한 편인데 물(川)은 간데없는 곳이 많다.

 이렇게 사라진 물길을 따라 함께 걸으며 역사 이야기를 듣는 「한양의 물길을 걷다」프로그램이 <로로로> 협동조합(대표 도경재)이 주관, 11월 3일부터 시작해서 총 6회차로 진행됐다.

 첫 시간은 <한양의 물길과 변화>를 주제로 실내강의로 진행됐으며, 현장 탐사는 11월 6일부터 시작했다. 첫 탐사지역은 <백운동천>에서 시작해서, 광화문 근처 옛 <송기교> 터까지다.

 <백운동천>은 청계천의 본류라 할 만큼 가장 길게 뻗어 있는 물길이다. 물길이 긴 만큼 이야기 거리도 많다.

 

 

집합장소인 경기상고 정문 앞에서 (좌) / 백운동천 주변의 물길 흐름을 설명하는 도경재대표(우)

 

■ 청계천의 상류이자 본류인 백운동천

 

 백운동천은 창의문 기슭에서 발원해서 현 경기상고 정문 앞 대로를 따라 흘러 청운초등학교 앞을 지난다. 그리고,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서울시 경찰청 왼편 길을 따라 광화문까지 이어진다. 중간에 청풍계와 옥류동천이 합쳐지고, 광화문까지 와서는 옛 송기교(松杞橋)를 기준으로 청계천과 합류한다. 백운동에서 동(洞)은 행정구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조선 시대 풍광이 특히 아름다운 명소를 일컫는 장소를 의미했는데, 한양의 5군데 명소로 백운동 외에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청학동을 손꼽았다.

 

 

백운동 계곡의 흔적을 보여주는 자취 (좌) / 낙엽을 밟으며 걷는 물길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우)

 

■ 청운초등학교 주변의 옛 자취들

 

 백운동천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 청운초등학교 가기 전에 백운동천의 지류 하천인 <청학계>가 합류한다. 청운초등학교에는 주변에 조선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생가터가 있고, 이를 반영하듯, 길 한쪽으로는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 유명한 작품비들이 전시 되어 있다. 청운초등학교를 지나 나오는 네거리 오른쪽으로는 조선 시대 중종과 그의 첫째 부인 이었던 단경왕후의 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는 이른바 <치마바위>를 멀리 볼 수 있다. 중종이 반정으로 즉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비가 된 단경왕후를 못 잊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단경왕후가 인왕산 한 바위에 그녀의 치마를 널어놓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또한 그 네거리에는 백운동천이 흘러내리는 방향의 직각 방향으로 다리(신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다리가 있었음은 곧 물길이 흘렀다는 단서가 된다. 현재 다리는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 다리의 난간석이 청운초등학교 교정에 보존, 전시되고 있다.

 

 

송강 정철의 생가터에서 (좌) / 백운동천 물길에서 보는 정철의 사미인곡 작품비 (우)

 

 

       1900년대 초 신교의 모습(뒤의 산은 백악산) (좌)  /  신교의 난간석은 청운초교 교정에 보존되어 있다 (우)

         (출처:독일 성 베네딕트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 문인, 화가 등 예술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

 

 백운동천을 계속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른 편으로 <통인시장>을 지난다. <통인시장>은 일본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남산에서 광화문 뒤로 이전해 오고, 동양척식회사도 이전해 오면서 일인 들의 주거지가 주변으로 확대되자 일인들을 위한 시장으로 조성되었다. 실제로 통인시장 반대편 골목에는 당시 일인들이 살던 집(적산가옥) 일부가 아직 남아 있다.

통인시장을 지나면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조선 시대 준수방)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이 주변은 문인, 화가 등 예술인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근대 윤동주, 이상, 노천명 같은 문인, 이중범, 박노수, 이상범 같은 화가 등 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특히, 이 지역은 조선 시대 평민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른바 위항문학 (委巷文學)의 중심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도시락 카페>로 유명한 통인시장 입구 (좌) /  세종대왕 나신 곳(조선 시대 준수방 터) (우)

 

■ 수령 600년의 통의동 백송이 있던 곳

 

 이제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 골목길로 들어가 본다. 일인들이 살았다는 적산가옥 터 주변에 눈에 띄는 입구가 나타난다. <제헌회관>이 있는 자리다. <제헌회관>은 제헌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제헌 동지회가 사용했던 건물이다. 지금은 국회 사무처에서 관리하고 있다.

또, 통의동 골목길에 접어들면, 수령 600년의 백송이 있던 곳을 찾을 수 있다. 그 백송은 1990년 7월 폭풍우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후, <백송 회생 대책위원회>까지 만들었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했다. 지금은 백송의 하단 일부분만 남아 있다. 백송이 있었던 주변은 조선 21대 왕 영조가 왕이 되기 전 지냈던 이른바 <잠저(潛邸)>인 창의궁 터이기도 하다.

 

 

제헌의원들이 모였던 제헌회관 (좌) /  수령 600년의 백송이 지금은 밑부분만 남아 있다 (우)

 

 

■ 세종마을 음식 문화거리

 

 통의동 백송 터를 보고 나오면 지하철 경복궁역 3번 출구 부근에 도착한다. 이곳 3번 출구 반대편으로 <세종마을 음식 문화거리>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이곳은 원래 <금천교시장>이었다. <금천교시장>의 유래는 이곳에 금천교(禁川橋)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천교는 조선 시대 궁궐 안에만 있었던 다리로 궁궐 밖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말에 있었던 다리로 전해 진다. 그리고, 주변 상가의 간판을 보면 외국 상표지만, 한글로 표시된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유명 아이스크림점, 커피점, 제빵점 등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한 곳들이 눈에 띈다. 아마도 이곳이 세종 마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금천교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경복궁역 부근 (좌) /  백운동천의 물길을 따라서(서울경찰청 왼편 길) (우)

 

■ 다리(橋)와 관계가 깊은 교회 이름

 

 백운동천은 지하철 경복궁역을 지나 서울경찰청 왼편의 길을 따라 흘렀다. 그 길을 따라 가보면 종교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볼 수 있는데, 도경재대표에 의하면, 이는 부근에 놓여있던 “종침교 (琮琛橋)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종침교에서 종교라는 이름이 유래됐다는 뜻으로, 다리와 교회 이름의 연관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백운동천 탐사길에 있었던 자수궁교(무안대군 이방번이 살던 자수궁 부근의 다리) 근처에 현재 자교교회가 있고, 서대문 석교가 있었던 부근에 석교교회 가 있다는 점 등이 그 점을 뒷받침해 준다.

 백운동천의 물길은 종교교회를 지나 감리교본부가 보이는 지점 두 갈래 갈림길에서 왼편 길을 따라 흘러 청계천과 합류한다. 그리고, 합류되는 지점에 있었던 다리가 바로 송기교(松杞橋)로 전해진다.

 

 

물길의 흔적을 알 수 시설물(원내) (좌) /  백운동천과 청계천이 합류되는 송기교 추정장소 (우)

 

■ 책에서도 볼 수 있는 한양의 물길

 

 도경재대표의 <한양의 물길을 걷다>는 마침내 책으로 출간됐다. 이제 책을 통해서도 우리 발밑을 흘렀던 옛 물길의 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출간을 기념해서 진행된 이번 특강은 11월 20일까지 계속된다.

 

 「한양의 물길을 걷다」백운동천 탐사팀(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