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동네 여행, 이문휘경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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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많은 것을 내어주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동대문구『이문동』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난달의 장위동 뉴타운에 이어 조금 가깝게 움직였습니다. 휴가를 내고 멀리 떠나 낯선 느낌과 새로움을 즐겼던 여행의 형태에서 벗어나 반나절에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동네 여행, 골목 여행이 코로나 시국에는 더 현실적인 여행법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문동 여행을 통해 현재 이문동의 키워드를 커뮤니티, 재개발, 전철역으로 만들어 보았고, 그곳에 사는 주민 몇 사람을 만나서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 동네 Biz의 재정의, 『커뮤니티』
사라져가는 동네의 풍경과 공간으로 인해 고향이라는 의미는 없어져 갑니다. 이제는 거주 지역과 주거의 형태를 떠나 커뮤니티의 기능이 더 중요해졌고, 지역을 둘러싼 관계와 환경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커뮤니티(로컬, 동네, 마을) Biz는 카페, 빵집, 서점, 브루어리(brewery, 맥주 양조장)로 시작했고, 코워킹(협업), 코리빙(함께하는 삶), 복합공간, 라운지, 살롱 등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는 사업을 너머 현재는 기술과 주제 기반의 플랫폼과 소셜커머스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문동 커뮤니티 Biz 현황과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이문동의 마을소식지 “이문이야기”를 만들며 주민자치회 활동을 하고 계시는 주민을 만났습니다. 이문동 소개와 하시는 일을 알려 달라는 이야기에 “이문이라는 뜻이 조선 시대 집도 지키고 치안을 담당하는 일종의 방범초소였고, 그래서 동네 이름도 이문안, 이문골로 불리다 1946년부터 이문동이 되었다. 이문동이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옛 정취를 느낄 정도로 낙후되고 정체된 지역 같지만, 사실 엄청 바쁜 사람들의 동네다. 이문동에는 주민자치회, 이문모아, 도꼬마리 등 여러 마을주민 공동체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다들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 같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단순히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연쇄적으로 문제가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하나 쉬이 끝나서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주민 모두의 행복을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꾸준히 활동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이 먹으면 나를 돌봐 주는 건 (자식이 아니라) 주민센터뿐이니까 동네일을 열심히, 성실하게 해야지~”라는 현답을 해주셨습니다.
지역 활동이라는 것이 돈 벌자고 하는 일도 아닌데, 왜 이 일을 하는지도 물었습니다.
“나도 어려운 일을 겪어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도 어려울 때 주민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세상에 의외로 좋은 분들이 많다. 여유로운 환경에 있는 사람보다 오히려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돕는 것 같다. 그리고 혼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민들이 함께 뭉치면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문동을 위해 소소하고 자잘하게 활동하는 일들이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가끔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때 뿌듯하다. 또, 내가 활동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시니어 로컬러(locoler,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렵기만 하던 삶이 쉬워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렇듯 욕심이 없어지는 순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 저녁, 신이문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밤의 한산한 철도 옆 골목 길거리 식당 풍경과 루프스퀘어에 붙어 있는 ‘이문동 주민들에게 식물을 나눠드립니다. #링링링’이라고 적혀있는 포스터를 보면서, 이문동 주민들은 꽃을 좋아하고 이문동의 커뮤니티 Biz는 이제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오래된 미래,『재개발지역』
“1~2년 전까지만 해도 없는 사람들은 이문동에서 집값 걱정 없이 편하게 잘 살았어요. 과거 이문동은 다가구 주택들이 많았었고, 이제는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거나 이사간 주민들도 있고, 졸업하고 한 번도 이 동네를 찾아올 기회가 없는 학생들도 있어요. 여기가 대중교통이 불편한 서울 외곽의 대학가이자 주거지역이라서 개발과 발전이 더딘 동네였지만, 재개발로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살려면 주거 형태가 발전되어야겠지요.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좋아지고 있는 거죠. 어차피 보존해야 할 동네는 아니었으니까”
철거 과정의 이문휘경뉴타운(좌측), 이문 푸르지오에서 본 철거 전 이문휘경뉴타운(우측)
오랜 시간이 지나, 이문러들은 그렇게 각자의 삶에서 어른이 되었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동네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누군가는 떠나고, 만나고, 또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렇게 이문동은 과거를 말로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이문동 집의 모습
그 과거의 기억들이 거리의 모퉁이에, 옥탑방 철계단에, 대문의 지붕에, 점빵(전포)의 간판에, 그리고 모든 부분 부분에 흠집으로 각인되고 무늬같이 새겨져 마치 손에 그려진 손금과도 같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고향이 재개발지역이었던 사람들에게 재개발지역은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던 장소들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는 곳입니다.
아직까지 동네에 나이 든 주민들이 많은 듯 보였지만, 사회초년생들이나 젊은 세대가 많이 유입되고 있는 이문동에서 각자의 마을과 고향을 소개하고 지역 활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모색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3) 기차 건널목 너머,『옛 동네』(외대역 동로길)
기차 건널목을 넘어서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식물’이었습니다. 꽃을 사가는 마음과 기르는 마음, 꽃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네, 만나면 서로 반기고 음식도 다 나누어 먹을 줄 아는 그런 동네의 모습이었습니다.
동네 곳곳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식물들
새로 들어선 정갈한 대리석 외관의 빌라로 인해 삭막한 건물도 있었지만, 건물 대부분은 담장을 넘어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꽃들처럼 봉사와 관심으로 나와 이웃 주민을 이해하며, 매일매일 걷는 삶의 향기가 가득한 동네 같았습니다.
이경시장 입구와 시장 내 커피콩 볶는 집(좌측부터)
이처럼 도심의 번잡함을 피해, 정신없이 밥벌이를 위해 앞만 보고 살아야 하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고군분투하는 거울 속 모습을 보는 행위로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어릴 적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달려 나올 것처럼 시간이 멈춰진 듯한 옛 동네 풍경의 골목길을 가끔 걷는다는 것은 어느 유명 여행지를 걷는 것보다 즐거운 여행인 것 같습니다.
이문동은 작은 모자이크들이 모여 큰 그림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차 건널목 빨강 신호등, 장사하는 노점의 전등, 전철역 옆 골목 가로등 불빛, 이경시장의 풍경에 익숙해져 갑니다. 어느 틈을 비집고라도 추억은 자라고, 익숙해지고 나면 길과 모퉁이는 풍경이 됩니다. 언젠가는 여기도 변화의 파고에 휩쓸려가겠지만, 가끔의 기억과 추억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추억을 느끼고 싶다면 이문동에 위치한 영화장, 신고서점, 비술나무 담소길, 귀일만두, 도꼬마리, 느림 갤러리, 천장산, 구제 옷가게 등.. 한 번쯤 가볼 만 한 곳입니다.
이문동에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면, 커뮤니티 공동체의 노력으로 오래도록 살고 싶어지는 동네, 젊어지는 동네로 기억되고 발전되었으면 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서로 도우면서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그런 동네가 되길 바랍니다.
50+시민기자단 허승규 기자 (mytripmade6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