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살이 탐색과정 '강릉에서 살아보기' ④
시나미찬찬 마실가요
오전에 강릉바우길을 걷고 난 후라 시장기가 느껴지던 참에 자유 시간이다. 월화거리에 성남중앙시장이 있다. 여행지에서 재래시장을 돌아보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재래시장에는 지방의 특색과 꾸밈없는 매력이 있다. 시장 안을 둘러보자니 시장기 때문인지 먹거리만 눈에 들어왔다.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에는 메밀전, 전병, 감자떡, 마늘빵, 닭강정, 커피콩빵 등 주전부리들만 보였다.
현지인에게 식당을 물었더니 국밥 골목을 알려주었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국밥집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 모둠 네 명은 식당 앞 가마솥에 뽀얀 국물이 끓고 있는 임계식당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강릉까지 와서 소머리국밥이냐고 할 법도 한데 금세 메뉴 통일이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자주 먹는 음식처럼 소머리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지역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재미도 맛보면서 말이다.
시나미찬찬투어는 월화거리에서 시작했다. 자유시간으로 흩어졌던 일행들이 다 모이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는 운영진이 언제 준비했는지 일회용 비옷을 나누어 주었다.
월화거리에서 월화교로 이어지는 길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가파른 길이다. 양쪽으로 계단길이 있고 가운데는 억새가 무리 지어 피어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중간쯤에 서 있는 모자상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 옛날 강릉 사람들이 ‘언제 저 산을 넘어보나?’ 하고 살았다는 얘기가 연상되는 조경이다.
상부에 올라서면 커피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있는 여성상이 있다. 사무실에서 머리 식히러 잠깐 나와 남대천을 바라보며 여유를 찾는 표정이다. 시간이 허락했다면 슬그머니 그녀 옆에 앉아 그녀를 따라 여유를 부렸으리라.
월화교는 양쪽으로 파튜니아와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노란 꽃 무더기들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군데군데 기차 철로가 깔려있어 예전에는 이 길이 기찻길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리 가운데 설치된 유리 바닥을 들여다보면 강물의 움직임에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여행자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함께 꽃길을 걷는 재미를 선사하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무월랑과 연화 부인의 전설을 담고 있는 월화정이 있다. 무월랑의 ‘월’자와 연화부인의 ‘화’자를 따서 월화정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월화정 앞 연못에는 신라 시대 경주 무월랑과 강릉 연화 부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설화를 전하듯 편지를 물고 있는 잉어상이 있다.
무월랑과 연화 부인의 설화는 신라35대 경덕왕 때에 무월랑 유정이 화랑도 사관으로 명주(강릉)에서 재임할 때 연화봉 아래 별연사지 부근에 있는 연못에서 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연화낭자(박연화)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서라벌로 떠나면서 백년가약을 언약하였으나 연락이 끊겨 박규수의 부모가 다른 데로 딸의 혼담이 오가므로 낭자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글을 비단에 써서 고기에게 먹이를 주면서 하소연을 할 때 황금빛 큰 잉어가 편지를 물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경주의 양어장에서 잡힌 고기에서 나온 편지의 사연을 알게 된 임금과 무월랑의 부모가 천생연분이라 하여 신어(神魚)의 연으로 혼인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월화정을 돌아 나오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우산을 펴기도 전에 후드득 떨어진 우박은 얼음사탕에 들어있을 만한 작은 구슬 크기였기 망정이지 크기가 컸다면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비바람도 심해서 다리 밑에 대피하여 추위에 떨었다. 한동안 쏟아지던 우박이 그치고 다시 걷는 길에서 하늘에 뜬 무지개는 환상이었다. 창포 다리에서 건너편 다리 위에 뜬 무지개를 바라보며 너나없이 반가운 환호성을 질렀다. 우박을 맞고 바로 무지개를 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길지도 않은 30분 정도의 시간에 펼쳐진 변화무쌍했던 날씨 쇼는 살면서 이런 광경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스펙터클(spectacle) 했다.
창포다리를 건너오면 명주동이다. 명주나들이는 강릉 원도심 명주동과 성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남문동의 문화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골목마다 그려진 담장 벽화는 단오제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골목의 분위기를 미리 전해 주기도 했다, 고택의 담쟁이덩굴마저 벽화가 되는 거리, 생긴 대로의 돌이 이정표가 되는 거리, 무지갯빛 우산 그림과 자물쇠로 매달아 만든 하트 창살에서 세대 차이 없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화합하는 무지개 문화마을 동네임을 알 수 있었다. 간간이 만나는 적산가옥은 카페, 식당, 사랑채로 변모하여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강릉에서 소나무 다음으로 자주 보이는 나무는 감나무다. 집 담장 옆으로 빙 둘러 서 있던 감나무가 많은 집에서 자란 나에게 감나무는 그리움이다. 빨갛게 익은 감을 매달고 집마다 한 그루씩은 서 있는 감나무와 간간이 보이는 탱자나무가 먼 기억 속으로 끌어당겼다. 가을에 딴 감을 살강이나 마루 어딘가에 숨겨 두었다가 손녀에게 간식으로 챙겨 주시던 할머니, 연세가 많아 기역 자가 된 증조할머니가 우물가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지팡이로 툭툭 따 드시던 모습들을 생각나게 하는 길에서 발걸음은 자꾸 멈추고 싶어진다.
사는 곳이 싫증 나거나 추억이 그립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나미 명주나들이를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세월 따라 골목 따라가는 명주나들이는 추억 속의 나를 따라갈 수 있다.
‘시나미찬찬’투어는 강릉시 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지역 탐방 프로그램으로 파랑달협동조합과 함께 했다.
*** 본 글은 지역살이 기록가가 강릉에서 살아보며 담아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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