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전문사회공헌단 스물아홉번째 이야기
50+기록가 김 남 진
내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은
교직에 33년 근무하고 명예 퇴직했습니다. 아이들과, 교직원들과 함께 지낸 33년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일을, 책에 쓰여 진 대로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퇴직 후에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봉사활동도 하고, 몇 가지 연수도 받고, 진로 진학 관련 강의 준비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글도 쓰고, 때에 따라서는 막노동도 하고 있습니다. 꼭 돈이 필요해서 일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 울타리 밖의 일을 경험하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이나, 정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회공헌활동 계기
사학연금관리공단에서 50+ 사업에 대한 문자가 와서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였습니다. 사회공헌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적당히 시간을 때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분야, 저 분야에 신청을 했습니다. 대충 신청한 두‧세 분야에서 친절한 전화 상담과 안내 전화를 받으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중복은 어렵다고 하고, 내용도 자세히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생각 없이 기록가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상점을 둘러보는 상점조 김남진 활동가, 맨 오른쪽>
나에게 사회공헌활동은 ‘학교’
그 이유는 첫째, 상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내게도 이웃이 있고, 내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둘째, 쪽방촌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관심을 가져야할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평생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면서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세상과 사람들에게 대해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넷째, 퇴직 후 당황스런 시간을 쉬면서 한 호흡 다듬을 수 있는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다섯째, 같은 활동을 하는 조원들과 인간적인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는 내게 학교처럼 가르침과 휴식을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50+기록가 상점조는 예지동 시계·귀금속·카메라 골목 관련 내용에 대한 기록물을 작성하였습니다. 예지동 골목은 재개발이 확정된 상태여서, 종로에서 곧 사라질 것입니다. 한 때 대한민국 시계·귀금속·카메라 유통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우리들의 ‘티파니’ 예지동 골목이 화려한 무대에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50+기록가 상점조원 일동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축인 우리 50+ 세대와 함께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시계·귀금속·카메라 골목의 현재 상태를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록하고 정리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자 합니다.
사회공헌활동 전과 후 차이점
첫째,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애환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와 관계없는 남들이 아니고 이웃이고, 친구고, 선배이고, 부모였습니다.
둘째, 나의 사회적 위치와 책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록 전문가 관련 연수를 받고, 예지동 시계골목에 관한 기록물을 만들기 위해서 중부캠퍼스에 드나들던 중, 어느 비오는 날, 우연한 기회에 쪽방촌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덥고 습한 날 사방 2미터도 안 되는 쪽방에 두 사람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은 과거에 중식 주방장이었다는 쪽방 거주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이 아닌 이유로 어렵고 힘든 여름을 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록은 참고 기다리는 어른과 선배 노릇을 배우는 길
명보사 유종재 사장, 함흥냉면 배순희, 시원사 윤현락 사장과의 만남, ‘제로섬게임’적 사고에 익숙한 나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격의 없고 솔직한 대화를 나눈 적이 드뭅니다. 특히 상인들과의 만남은 거의 대부분 이해관계를 전제로 하기에, 한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실을 연상하게 하면서 경계심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세 분들은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 내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모습을 보이면서 또 시민으로서, 이웃으로서의 자세와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재개발을 막무가내로 추진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예지동 시계 골목이 재개발 되더라도 의미 있는 건물이나 상징적인 길은 남겨 두기를 바란다.”는 명보사 유종재 사장, 함흥냉면 배순희 사장의 말이 귀를 맴돕니다. 그들의 작은 소망이 반영되기를 바라봅니다.
현장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기록물을 작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마음의 부담이 매우 컸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지, 막막했지만, 같은 조원 이신범선생님이 다양한 경험과 인품으로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고 진행하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신범 선생님과 나는 전혀 다른 생활 스케줄 때문에 같이 활동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신범 선생님의 많은 이해와 협조로 인터뷰 대상 섭외, 진행, 기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늘 참고 기다리고 양보하는 이신범 선생님을 통해서 어른 노릇, 인생 선배 노릇이 힘들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사회공헌활동
나이를 먹을수록 어깨가 무거워지고 힘들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형이나 누나가 되고, 선배가 되고, 가장이 되고 상급자가 되면서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책임질 일도 많아지고, 참고 양보해야 할 일도 많아져만 갔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원로입니다. 어른답게, 원로답게, 아직 서툰 후배들에게 비젼을 제시해 주고, 해결책을 알려주되, 더 중요한 것은 참고, 기다리고, 양보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힘든 시절을 잘 견뎌냈고,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했습니다. 우리들의 은퇴는 갑작스런일이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입니다. 아이처럼 떼쓰지 말고, 징징 거리지 말고 원로답게 어른답게 우리의 존재가치를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앞으로 10년 후
나름대로 분명하고 확고한 일과 자리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문서작성, 정보처리, 대인관계, 외국어, 체력, 기타 모든 면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든지 할 수 있고, 하고 싶습니다. 당장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서, 주변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것을 찾기 위해서,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심지어는 막노동도 합니다. 아직은 무슨 일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열심히 당당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상점조 조별 모임과 논의 중 한 컷 김남진 활동가, 오른쪽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