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시대의 좋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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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인한 불편, 불만, 불안이 넘쳐나는 시기에 좋은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니, 머리가 좀 이상해진 거 아니야? 할 수 있겠다.

 ‘일상이 무너졌다,’ ‘학교에 가지 못한다,’ ‘실직자가 늘었다,’ 등의 나쁜 뉴스가 넘쳐나니 말해 무엇 하겠나. 거기다 미국과 유럽, 남미의 코로나19 사망자 숫자는 어마 무시하다. 맨해튼 한복판에 사는 내 친구는 비닐 포대에 담겨 나가는 시신들에 기겁해, 남편과 함께 직장을 때려치우고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산속 오두막에서 뱀을 내치며 지낸단다.

 

 

 그러나 2020년을 이리 보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어차피 갇혀 지내야 한다면, 나름의 장점을 찾으며 마음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나, 싶으니 코로나19 시대만의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내가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기자 평론가 시사회에 가서 영화 보고 글 쓰고 방송이나 하면 되는 프리랜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 직장인이었다면, 이런 한가한 생각은 못 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찾은 코로나 블루 시대 장점은 기실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단출하게나마 정리해본다.

 

첫째. 모두 마스크를 끼고 다니니 내 입 냄새는 내가 맡으면 되고, 다른 사람 입 냄새는 안 맡아도 된다.

 만원 지하철에서 이만한 축복이 또 있겠나. 대중교통 이용 시 반드시 KF94 흰색 마스크에 페이스 쉴드까지 해야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따라서 쓰나 마나라는 일회용 마스크나 망사 마스크를 걸치고, 모바일 폰 끼고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웃어젖히는 사람을 보면 목을 조르고 싶지만, 꾸우꾹 참고 자리를 피한다. 담배 피우면 비말이 더 퍼진다니, 길에서 담배 피우지 못하는 법까지 만들어지면 좋겠지만, 대한민국은 끽연가에게 거둬들이는 세금을 영원히 포기하지 못할 테고.

 

 

둘째. 한식 문화를 바꿀 천운을 얻었다. 

 여러 명이 한식당에 갔을 때, 자기 입에 넣었던 젓가락으로 고기 뒤집어 내 앞에 놔주는 걸 친절로 여기는 선배, 찌개나 물김치를 덜어먹지 않고 제 숟가락 담그고 퍼먹는 동창 때문에 속이 뒤집어져, 그냥 박차고 나오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이제는 구내식당 배식대 앞에서 이야기하는 어르신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조용히 야단칠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은가. 움찔하며 입 다무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나란히 선 청년마저 나를 거들어주며 공감하니 든든하다. 일본에 갈 때마다, 칸막이 친 홀로 식탁에서 라면 먹는 게 무척 좋았었다. “식사는 반드시 혼자, 묵묵히 하는 것”이 공공 예절로 정착되면 좋겠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찰의 발우 공양이 자리 잡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셋째. 외식을 하지 않으니 식비가 엄청 줄었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이가 많다는 뉴스도 보았지만, 배달의 민족 자랑하다 배달원 과로사를 부르는 데 내가 일조할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배달 음식은 조리 과정을 알지 못하므로, 내겐 소화 불량을 넘어 체하고 토하게 만드는 지름길일 뿐이다. 평소에도 일반 식당보다 대기업, 구청, 공공기관 구내식당을 즐겨 이용했다. 이유는 너무 많다. 수저를 소독하며, 영양사가 식단과 염도 등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식당은 영세 자영업이 대부분이라 수저 소독은커녕, 화장실 옆 바닥에서 그릇과 식재료를 씻는 등, 위생을 무시하는 데다, 맵고 짠 것을 자랑으로 여겨 고혈압, 당뇨 환자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뉴욕 친구가 거리 두기가 안 될 정도로 한국 식당이 작고 영세하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기함했다. 부득이 점심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오전 11시 이전이나 오후 2시 이후로 하며, 대각선으로 앉고 대화를 일체 삼가야 한다. 식당에서 떠드는 사람, 이 역시 목 조르고 싶지만, 꾹꾹 화를 삼키며 빨리 먹고 나온다.

 

 

넷째. 외출할 수 없으니 쇼핑이 불가해 돈 쓸 일이 없다.

 그래서 집안을 뒤져보았다. 옷, 구두, 핸드백, 심지어 세숫비누, 치약, 칫솔, 가루비누, 양말, 두루마리 휴지에서 세수수건까지, 어마어마하게 쟁여둔 걸 알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100세까지는 쌀과 반찬거리, 기초화장품 정도만 사면 목숨 부지하는 데 지장이 없겠다.

 

다섯째.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더 독한 전염병이 돌 거라는 예고까지 나온 마당이고 보니, 가장 바람직한 종교는 불교 아니겠나, 싶다.

 교당에 모여 비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예배 형식만을 신에 대한 예우로 여기는 유대교, 이슬람교, 개신교는 너 죽고 나 죽자 종교 같아 무섭다. 홀로 참선하고 깨달으면 되는 산 중 종교 불교가 전염병 시대 최고 최선의 종교라는 호감이 생겨, 앞으로 종교를 갖는다면 반드시 불교로 하겠다고 결심했다.

 

 

여섯째. 비말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이는 인간에게 더 이상 말을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뜻이 아닐지.

 말을 쏟아내기보다 조용히 안으로 삭이며 자기 글을 쓰는 시대로 가야 한다는 계시 같다. 말 많은 자 말로 망할지니, 소음 없는 조용한 세상이 도래할 것 같아 기대된다.

 

 아직은 코로나 블루에 머물고 있지만, 레드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 같다.

내년 말이나 되어야 백신도 치료제도 안심하고 쓸 수 있게 된다니, 느긋하게 지내는 수밖에. 내게 있어 코로나로 인한 갑갑증, 어려움은 단 두 가지뿐이다.

 

첫째. 1년에 두 번 이상은 기내식을 먹어야 안정이 되었는데, 그걸 못하는 것.

 더구나 60대 말에는 세계 일주 크루즈를 타고 멋진 노신사와 황혼의 로맨스를 불태울 계획이었는데, 이게 불가하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아쉽다. 더구나 관광 공무원 후배 말에 따르면 “이전처럼 적은 비용 고효율의 한국형 패키지여행은 없어질 거예요. 여객기 이코노미석이 사라질 테니까요. 돈 많은 사람 아니면 해외여행이 정말 어려울 겁니다.” 아, 그나마 많이 다녀둔 걸 위로 삼을밖에.

 

둘째. 마스크 구입 비용이 만만찮다.

 홈쇼핑 보다 마스크 싸게 팔면 무조건 사서 쟁여두는 버릇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