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 하면 서양의 고전적 예술 음악을 뜻한다. 영화, 드라마, 각종 광고에서 접하는 클래식 음악은 제목만 모를 뿐이지 이미 익숙하게 우리네 일상에 스며있어서 클래식을 잘 모르더라도 3B로 불리는 바흐, 베토벤과 함께 ‘브람스’ 정도는 안다.
그렇지만 경제적, 문화적 수준이 높은 계층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에 더해 클래식은 지루하고 난해할뿐더러 연주 시간도 비교적 길다는 고정관념 또한 불식하기 어렵다. 그뿐인가, 외래어로 된 복잡한 전문용어와 작품 번호에 쓰이는 비밀번호(?) 등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이유는 너무 많지만, 반대로 몰라도 그만이며 알게 되면 그만큼 푹 빠질 만큼 또 다른 매력이 있기도 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민음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24세이던 1959년에 쓴 소설의 제목이다. 세속적인 삶을 배경으로 두 남자에 대한 한 여인의 통속적인 관계를 모호한 내면의 감정으로 표현했다.
사랑이 반드시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듯이 고독은 사랑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늘 따라다닌다. 그렇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영원한 사랑’보다는 ‘덧없는 사랑’을 깨달아가는 삼각관계 인물들을 묘사한 사강의 자전적 소설 속에 이 유명한 대사가 등장한다.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의 곡들에서는 대체로 인생과 자연 그리고 고독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제목으로 오마주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좌)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SBS / (우)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 네이버 영화
그런가 하면 2020년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TV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있다.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아슬아슬 흔들리는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데 요즘 모 드라마에서 천재 자폐 변호사로 열연 중인 박은빈이 주연해서 당시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던 모양이다.
또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한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이란 영화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아들(박정민 분)이 연주하는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5번’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브람스와 슈만과 클라라
▲ 로베르토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 클라라 슈만.
브람스(1833~1897)는 어떤 음악가였을까? 브람스를 이야기할 때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슈만은 장인과의 소송 끝에 클라라와 결혼한 운명적 사랑의 장본인이고, 브람스는 슈만의 제자였다.
세 사람은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우정을 쌓았으나 슈만은 우울증, 정신 분열,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서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이후 클라라와 그의 아이 일곱을 지킨 건 브람스였다. 브람스는 14세 연상의 클라라를 짝사랑하여 끊임없이 구애하고 편지를 썼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생을 함께 보낸다. 브람스는 결혼도 하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켰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고전주의 작곡가 바그너와 대비되어 낭만파 작곡가인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하세요?”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대중음악이 아닌 브람스로 대변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세요?”라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겠다.
브람스는 낭만주의의 정서를 간직한 채 엄숙한 고전주의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나 늦가을에 듣기 좋은 북독일 출신의 브람스 음악은 화려하지 않지만 순수하고 소박한 느낌이 든다. 바그너가 오페라만 작곡한 데 비해 브람스는 오페라를 한편도 쓰지 않았고, 바이올린 협주곡은 단 한 곡만을 만들었다.
고전음악의 배경 읽기
인간의 욕망이 시각은 회화로, 청각은 음악으로, 후각은 요리와 향수로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감 중에서 가장 늦게 사라지는 것이 청각이라는데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와 치유를 더해 작곡가의 개인적 삶을 내면에 새겨 넣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 작품에 얽힌 시대 배경이나 역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면, 작곡가의 인생 스토리를 덧붙여 그 음악 세계로 진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관련된 당시의 정치적 배경이나 사건, 시간과 장소가 의미 있는 이유다.
헨델은 결혼하지 않았으되 부유하게 살았고, 바흐는 스무 명의 자식을 두고 힘들게 살았으며, 브람스는 연상녀 클라라와 플라토닉 연정으로 유명하다는 정도라도 알고 나면 그들의 음악을 듣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클래식 음악 듣기
클래식은 문화, 성별, 인종과 무관하게 전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공통의 언어다. 근래에는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서 음악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예전처럼 전문 음악감상실을 찾거나 집에 LP판을 구비하지 않아도 된다.
클래식 음악이 누군가를 위축시킬 만큼 특별히 위압적인 문화도 아니다.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콘서트나 공연도 일 년에 한두 번은 갈 만하고 저렴한 공연도 많다. 유명 대중가수의 콘서트 공연과 비교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익숙해지고 친숙해지기까지는 부모나 재산, 배경 따위가 아닌 ‘듣고자 하는 사람의 시간’을 필요로 할 뿐이다. 영화 ‘대부’ 주제곡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은 3분 30초, 베토벤 교향곡 5번은 26분이면 들을 수 있다. (물론 말러 교향곡은 1시간이 넘고, 바그너 오페라는 6시간 이상 걸리지만) 어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 클래식 음악은 1700년부터 길어야 1950년까지 25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서양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클래식을 다 좋아하기는 어렵다. 작품 분석은 전문가의 몫이며 우리는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즐겁게 소비하면 된다. 클래식과 쉽게 친해지려면 귀에 익은 곡, 너무 길거나 지루하지 않은 곡, 가벼운 소품이나 유명한 악장, 선율이 명확한 음악부터 듣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클래식은 한 번만 들어서는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다.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최연소(18세)로 우승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바이올린 양인모, 첼로 최하영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K-클래식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파고든 클래식의 세계! 특별한 날, 분위기 잡고 사랑하는 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본다면 사랑이라는 선물을 더욱 의미 있는 느낌으로 전하지 않을까?
“당신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50+시민기자단 정종호 기자 (powerarcd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