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버린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삼선교의 나폴레옹 제과점을 가고 있다.
1992년에도 걸었던 길이다. 성북동에 살고 계신 교수님 댁에 방문하기 위해 동기 몇 명이 나폴레옹 제과점을 갔을 때 일이다. 그 작은 빵 조각의 사악한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에 움찔했던 기억이 있다.
나폴레옹 제과점을 가는 길 정류장은 어디에 있을까? 그 당시는 동일한 번호와 노선으로 정류장을 두 곳으로 구분하여 정차했다. 즉 같은 번호 버스라고 하더라도 정차 지점이 달랐다.
▲ (좌) 파란색 번호 버스 / (우) 빨간색 번호 버스
만약에 돈암동에서 혜화동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나폴레옹 제과점을 간다면, 버스 번호의 색깔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먼저 지금의 국민은행 동소문 앞이 예전 파란색 번호 버스 정류장이고, 삼선교역 7번 바로 앞이 예전 빨간색 번호 정류장이었다. 그러니깐 나폴레옹을 가려면, 빨간 버스를 타야 더 가까운 곳에 내릴 수 있었다.
반면, 돈암동으로 향하는 버스는 삼선교역 1번 출구 바로 앞에서 빨간색과 파란색 버스 모두 버스 정류장 한 곳에서 승차가 가능했다.
지금은 파란 버스 정류장이던 자리에 빌딩이 들어섰고 그 앞에 조용히 마을버스 푯말이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빨간 버스 정류장 자리엔 여전히 나지막한 건물은 그대로 있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이들 줄을 서 있다.
건 건너편 돈암동 방향 정류장 역시 서울시 무료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다.
▲ 혜화동 방향 : 파란색 번호 버스 정류장·빨간색 번호 버스 정류장 / 돈암동 방향 : 공통 버스 정류장
예전에 ‘종로’는 빨간색·파란색 버스를 구분·운행하는 대표적인 구간이었다. 신설동에서 종각 방향은 종로 5가, 3가처럼 홀수 거리는 파란색 버스만 정차하고 종로 4가, 2가 짝수 거리는 빨간색 버스만 정차했다. 물론 반대편 신설동 방향의 종로 4가, 2가 짝수는 파란색, 종로 3가, 5가 홀수는 빨간색 버스가 정차했다. 때문에 삼선교역의 운행의 불편함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버스 정류장도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으로 옮겨진 지 오래되어, 보도의 역할이 분명해졌고, 정류장의 혼잡도 줄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통 상황 및 버스의 도착시간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스마트 에코쉘터로 서울 전역에 동일한 광고영상 송출이 가능하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피함은 물론 따뜻한 벤치에 앉아 몸을 녹일 수 있게 되었다. 그 편의성과 기능성 그리고 디자인 자체도 쾌적하기만 하다.
그런데 예전에 그 정류장이 그립다.
빛바랜 버스 정류장
매서운 추위와 뜨거운 더위 속에서 도착시간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애간장만 녹인다. 정류장에 있는 모두가 달려오는 버스의 번호와 모양에 시선을 쏟는다.
혹여나 운행 간격이 긴 버스라도 기다리면 저절로 지친 한숨이 나온다.
그 마음을 달래고자 복제 테이프에서 흐르는 최신 유행곡이 돌림노래 한다.
길거리의 떡볶이, 어묵, 튀김, 그리고 겨울에 군고구마가 허기를 재촉했다.
정류장 뒤에 병풍처럼 진열된 쇼윈도는 호기심을 채울 눈요깃거리가 있다.
좌판에 펼쳐져 있는 모 연예인의 유행 액세서리는 늘 새롭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상점 입구를 막고 있다며 볼멘소리하는 사장님 때문에 가판대 앞을 서성이며 일간 스포츠 신문, 주간지, 월간지를 힐끔거린다.
버스를 타기 전에 주머니 속을 동전을 확인하고 잔돈으로 바꾸기 위해 껌을 사기도 했다.
스마트 폰 없는 버스 정류장의 우리의 오래전 모습이 보였다.
나폴레옹 제과점을 가는 길에서 빛바랜 버스 정류장을 만났다.
50+시민기자단 우은주 기자 (wej257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