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서 배우는 지혜: “천리마지하철택배”사업단을 가다
옛날 중국에 한 어부가 백 길이 넘는 거대한 그물을 짜고 있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왜 그리 쓸모없이 그렇게 크게 만드냐고. 그러자 그 어부는 “올올이 내 목숨이 길어지는데 쓸모가 없다니. 이 그물은 손발에 힘이 빠져 바다에 나가지 못한 50세부터 짜기 시작해 내 나이 70까지 짠 것이오. 앞으로 20년은 더 짤 생각이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송나라 주신중이 쓴 『노계론(老計論)』에 나오는 것으로, 일에 마음을 쏟으면 노후가 뜻있고 즐거우며 건강해진다는 교훈이다. 훗날 이 어망은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해서 연수망(延壽網)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람의 생애는 간단히 일과 휴식으로 요약된다. 세월에 따라 육체적인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지만 변화에 걸맞은 일을 찾아내는 것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 때문에 고령화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복지의 핵심이자 마땅히 있어야 할 사회적 예우가 되겠다. 일은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수입 향상에 보탬이 되는 기회가 제공 되고 사회적인 소속감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어르신들의 자존감과 삶의 긍지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천리마지하철택배”는 도봉시니어클럽에 소속된 어르신들의 일자리다. 2008년 3월에 시작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설립 이래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 우리보다 빨리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도 주목 받는 일자리가 되었다. 작년 가을에 일본 NHK에서 택배의 전 과정을 취재해갔을 정도다.
20명 남짓한 천리마지하철택배단의 평균 연령 70대 중반. 최고령자는 80대 중반에 이른다. 영업에서 주문 배달까지 모든 과정이 오로지 어르신들에 의해 진행된다. 작은 벤처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동대문 가까이 사무실이 있어 인근 평화시장 일대의 신발과 의류 업체들이 주요 거래선이다. 전화로 주문을 받으며 어르신들의 배달 범위는 지하철과 전철이 다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다. 어르신들은 한 분당 하루 평균 서너 건씩의 택배 주문을 소화한다. 배송과 배송 사이의 시간은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하거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앞선 글 속 중국 어부가 짜는 그물처럼 “어르신들에게는 ‘연수택배(延壽宅配)’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어르신들의 일을 통한 사회 참여에는 단순한 복지와 예우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천리마지하철택배단 어르신들을 만나 보면서 문득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의 일화가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한석봉은 글씨를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썰며 각자의 기량을 겨룬 끝에 어머니의 솜씨에 훨씬 못 미친 한석봉이 대오각성, 다시 산 속에 들어가 글씨 공부에 전념한 끝에 조선의 명필이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말이다.
약 14억 개에 이르는 인간의 뇌세포는 자신들이 해온 일에 적합한 특징적이고 창조적인 배열과 배선을 이룬다고 한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손을 움직이는 속도가 늦을 뿐 일생을 두고 해온 솜씨를 어둠 속에서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거기에 더하여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기량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로움으로 자식의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천리마지하철택배단 어르신들은 한국전쟁을 비롯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 온 세대다. 그들이 간직한 남다른 경험과 연륜은 결코 ‘인터넷 검색’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우리의 사회적 무형 자산인 것이다. 궁핍했던 시절 어르신 세대의 땀방울이 우리 시대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면 풍요의 시대가 가져온 작금의 갖가지 사회적 문제들은 어쩌면 어르신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지혜 풀(POOL)’속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길을 잃고 배고픔과 추위에 떨던 군사들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여 구출해낸 것 자유로운 한 마리 늙은 말이었다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고사도 있지 않던가.
50+의 시민기자로서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그분들이 간직한 지혜 창고의 문을 두드려볼 생각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와의 차이점을 생각해 볼 것이고 할 수만 있다면 세대 간의 삶을 영위하는 생각과 행동의 공통분모를 모색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