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1인과 이혼 1인, 그리고 비혼 1인이 만났다. 이런 분류가 온당한 것은 아니나 오늘의 대화가 그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기에 내키지 않지만 구분해 보았다. 셋은 속내를 터놓는 동성의 친구 사이. 그들이 각각 1인분의 생각에서 벗어나 사고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었다면, 그 절반은 아마도 서로의 덕분일 터였다. 코로나 탓에 반년 만에 만난 3인은 못 본 동안의 안부와 근황을 길게 나눴다. 한참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친숙하고 무슨 얘길 해도 허물 삼지 않으니 수다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넌 요즘 널 위해 뭘 해주니?"
그날의 화두였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TV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대사로, 송화가 오랜 벗 익준에게 건넨 질문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자신은 자신을 위해 장작 거치대를 샀다고. 바닥에 놓으면 되지 쓸모도 없는 장작 거치대를 왜 샀느냐는 반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답한다. “그냥 샀어. 날 위해 그냥 샀어.”
"나는 나를 위해 마사지를 받아."
기혼 1인의 답이다. 속 모르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팔자 편한 소리겠으되, 2인은 안다. 그것은 살기 위해 치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그녀는 서로 다른 성향의 아들 둘에 세상 효자인 남편과 당신 자식이 세상 최고라 확신하는 시어머니까지, 모두 넷을 ‘모시고’ 산다.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전향했는데, 이때부터 자기 의견을 죽이며 살았다. 그것이 집안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가장 빠른 길임을 터득한 때문이었다. 겉보기에 평화로웠으나 그녀는 서서히 망가져 갔다.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니라서 급기야 병으로 발현되어 한동안 병원 신세도 져야 했다.
이후 그녀는 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전신 마사지였다. 처음에는 등을 떠밀며 권하던 시어머니가 1년을 넘기자 당신 아들이 힘겹게 번 돈으로 엉뚱한 사람이 호사를 누린다며 못마땅해 했다. 남편 역시 어머니 눈치를 보며 은근히 싫은 티를 냈지만 다 모른 척, 일주일에 하루 어김없이 대문을 나섰다. 그녀가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하며 마사지를 받은 것은 몸 망가지면 마음이 더 피폐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마사지는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나름의 최선책인 셈이었고.
여기에는 친구들만 아는 진실이 숨어있다. 마사지는 보름에 한 번, 나머지 외출은 집과 가족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시간이라는 것.
"난 날 위해 남자를 만나."
이혼 1인의 말이다. 오래전 출산과 육아 포기 선언을 한 비혼 1인에게 ‘너는 여자도 아니여’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안 쓰면 퇴화한다는 용불용설을 들먹이며 비혼 1인의 섹스리스를 개탄했던 친구다. 쉰 넘기며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가긴 했어도 그녀는 여전히 사랑 지상주의자다. 그녀가 우리에게 전한 이혼 사유도 ‘서로가 더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남자’는 ‘자식’ 되시겠다. 부모가 이혼하자 말없이 친구 자취방으로 거처를 옮겨버리고 오랫동안 만남을 거부해 엄마 마음고생깨나 시킨 장본인이다. 그 상처와 외로움을 사내의 품에서 찾으려 했으니 끝끝내 채울 수 없었던 건 당연했을 것이다. 아들이 철들면서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지만 늘 어렵고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허기가 진다는 말에는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어쩌랴, 이 애잔한 쉰 너머 여인네들을. 이러니 비혼 1인이 내 팔자 오뉴월 개팔자, 무자식 상팔자를 소리 높여 외칠 밖에. 이렇게 살아간다. 가끔 외롭고 서럽고 절망도 하면서. 다행히 살아있고 내 마음을 들켜도 좋을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 세상 사는 재미를 붙이며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는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할지, 그 여정의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삶이 계속되는 동안 함께 하자 했다. 그 말은 좀 유치하고 낯간지럽긴 해도 한편 위안이 됐다. 함께 늙어가기를, 더불어 성숙한 성찰이 더해지기를.
친애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었으니 이제 비혼 1인인 내가 답할 차례이다. 다만 허락된 지면이 다했으니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