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죠? 久ひさしぶりです(오랜만입니다)。사노 요코의 서간집 『친애하는 미스터 최』를 읽다가 요시다 씨가 생각나 편지를 씁니다. 『백만 번 산 고양이』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는 독일 유학 시절에 만난 한국 남자 최정호 씨와 40년간 오랜 세월 편지로 우정을 쌓았더군요.
“진정한 국제 친선은 나라와 나라가 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욕하면서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것으로 생각해요. 한 명이 한 명을 담당하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한국 친구는 닥터 한 명(최정호씨)으로 족합니다. (150쪽)”
저는 이 생각이 무척 신선했습니다. 지금까지 국제 친선이라고 하면 국가원수의 정상회담, 국가대표 운동선수의 친선경기, 국보급 예술가의 문화교류 등 거창한 것만 떠올렸거든요. 저도 요시다 씨를 담당했으니, ‘진정한 국제 친선’을 맺었구나 싶어 뿌듯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제가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니까 지인이 이웃에 사는 요시다 씨를 소개해 주었죠. 남편 직업이 같고 아이의 학교, 학년도 같은 학부모라 금방 가까워졌죠. 살짝 아쉬운 점이라면 요시다 씨가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뿐이었지요. 하하하. 한국어가 조금 어설펐다면, 더듬거리는 저의 일본어가 덜 부끄러웠을 텐데요. 일본인이 어려워한다는 한국어 받침 발음까지 완벽하니, 제가 지금까지 알아듣지 못한 단어는 딱 하나입니다. 기억나세요?
“제가 ‘야-그’를 너무 좋아하나 싶어요”
“저도 어릴 때는 ‘야구’ 좋아했는데요. 오비베어스(현 두산베어스) 어린이 회원이었어요.”
“오비 베어스는 어린이가 먹는 야-그예요?”
“네~에? 먹어요?”
제가 ‘약(藥)’을 ‘야구’로 듣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다 한참 웃었더랬죠.
요시다 씨가 성당에서 독서 치료 과정을 공부한 계기로, 우리 만남은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에 가까웠습니다. 회원은 단둘이었지만 책 이야기는 항상 풍요로웠죠. 요시다 씨는 의료봉사를 해외로 두루 다녀서 그런지 세상을 보는 눈이 넓고 생각이 깊어서, 제가 늘 많이 배웠답니다.
이제는 제가 서울로 이사와 자주 만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만약 앞서 인용한 책 『친애하는 미스터 최』를 함께 읽었다면, 다음 문장에 줄을 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결코-다시 태어나도–다른 삶을 살지 않아요. 흔히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같은 실수밖에 하지 않아요.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만 되풀이하는 거예요. (92쪽)”
우리는 타인의 실수를 쉽게 판단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니까.” 이 말을 나에게 적용해보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변명하겠지요. “실수였어. 앞으로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우리는 늘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오늘도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7권이나 빌리고 말았습니다. 매번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거나, 마저 읽으려다가 2주의 반납기한을 넘기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다음엔 꼭 읽을 만큼 빌릴 거야.’ 다짐하면서도 책 욕심을 내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서점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책장에 아직 펴보지 못한 책이 밀려있는데도 또 책을 삽니다. 사노 요코 말대로 ‘다시 태어나도’ 책 욕심은 버리지 못할 지도요. 보석 장신구나 비싼 옷과 가방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해봅니다.
요시다 씨, 당신을 만나 ‘나이가 들어도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외국인 친구라니요! 누구에게나 오는 행운은 아니겠죠. 국경 없는 한마음으로 공감할 때도,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느낄 때도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청소기로 구석구석 밀었으면 좋겠어요.” 비유도 재밌게 하던 요시다 씨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앞으로 자주 편지하겠습니다. 책 속에 두 사람은 일본어로 편지를 왕래했지만, 저는 한국어에 능통한 요시다 씨 덕분에 편하게 우리말로 편지를 쓸 수 있으니까요. 다시 한번 오랜 우정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접습니다. 춘천에서 늘 평안하시길.
2021년 7월
전윤정 드림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