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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자슥들! 언능 꺼지지 못해!” 천둥 같은 소리였다. 곱게 쪽진 백발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우린 포스에 압도당해 찍소리도 못하고 우물에서 물러섰다. 그 후로 여러 번 우물가 진입을 시도했지만 희한하게도 그때마다 할머니가 등장했다. 물놀이는커녕 우물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아쉬움과 두려움이 커지면서 우리는 할머니를 마귀 할망구라 불렀다. 그렇다고 우물가 도전을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여름방학까지 끈질기게 시도한 결과, 어느 해 질 무렵 마침내 우물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얼마나 신나고 짜릿하던지! 도드레를 돌려 바가지를 잽싸게 우물 안으로 던졌다. 까치발로 물을 퍼 올리느라 조금은 위험했지만 그만큼 짜릿했다.

 

물놀이에 빠져들려던 찰나, 익숙한 날벼락이 들이쳤다. “이놈들! 맞아야 정신 차릴 거냐! 여서 놀지 말라니까!” 아뿔싸, 너무 신난 나머지 마귀 할망구를 잊고 있었다! 몽둥이까지 휘두르며 나타난 할머니는 하필이면 내 셔츠를 낚아챘다. 난 한참을 쭈그리고 야단맞았다.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마지못해 모기만 한 소리로, 다신 오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서야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불쑥 거칠고 주름진 손위의 하이얀 술빵이 눈앞에 들어왔다. “이거 먹고 후딱 집에 가라. 여기는 너희 아그들한텐 아주 위험해. 알았지?” 마귀 할망구답지 않은 따뜻한 말투로 내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어찌하여 그토록 아이들의 우물가 놀이를 뜯어말렸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어른들이 그를 가리키며 사연 많은 어르신이라고 했던 말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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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빛의 깊은 못이라는 청담동을 마주하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굳이 선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사회적 안전망이란 어려운 말을 빌려 쓰지 않더라도, 아이를 키운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 무릎에서만 놀 수 없는 법이다. 대문을 나서고, 골목을 걷고, 거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물론 곳곳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길 위를 아이 혼자 힘으로 헤치고 나아가 성장한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그 기적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 힘이 바로 마귀 할망구이고 마을 전체가 아닐까? 내 아이, 네 아이 따지지 않고 함께아이들을 길러주는 사회. 어른들이 눈으로 지켜주고, 손으로 보살펴주고, 따끔한 말 한마디로 바로잡아주는 마을. 내 고향 청담동은 그런 곳이었다.

 

요즘 육아는 아이템 빨’(각종 장비나 용품 등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비속어)이라고 한다. 배우자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린 자녀를 기르다 보면 아무래도 장비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육아 장비들이 워낙 고가라 쉬이 마련하기가 어렵다. 독박 육아(배우자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린아이를 기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때문에 이혼까지 고려 중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들도 들려 온다. ‘마을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육아 아이템은 세상에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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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명품거리에서 

 

 

우물가에서 맨발로 뛰놀던 그 여름날의 오후 같은 날에 청담동 골목을 거닌다. 비좁은 길 곳곳엔 공사 현장이 펼쳐져 있다. 이리저리 빠져나가려 버둥대는 차들도 많다. 그 아슬아슬한 골목에 한 아이가 엄마의 손목을 꼭 잡고 걷고 있다. 작은 아이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미안함이 올라온다. 나는 누군가에게 마귀 할망구라고 불릴 용기가 있는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 가수가 구입한 아파트 이름이 에테르노’(eterno; 영원한, 영원불멸의)라 한다. 부디 그가 옛 청담동의 아름다운 정서를 맛볼 수 있길 바래 본다. 사람이 살면서 영원히 지키면 좋을 가치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음악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아티스트가 되면 참 좋겠다. 이쯤에서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뭐하나 보탬이 되어주진 못하면서 뭘 이렇게 바라고 원하나? 그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신스팝 신디사이저를 중심으로 한 전자음악의 한 갈래로 친숙한 멜로디를 앞세워 대중적인 음악을 추구한다

 

 

50+에세이작가단 정호정(jhongj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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