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기억 속에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는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쓴 말이다. 한 장소의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보는 사람이 발견해낸다는 말이다. 지난 1월 폭설 때 찾았던 가파도의 모습은 청보리 철에 사람이 넘칠 때와는 무척 달랐다. 가파도는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사람이 다 빠져나간 세트장 같았다. 사람이 발길이 드물어 식당과 카페도 문을 꼭 닫아걸었다. 마을의 흔적을 텅 빈 거리에서 찾아 나섰다.
모슬포항 옆 운진항에서 배를 타면 10분 만에 닿는 가파도. 가깝고도 먼 느낌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벽화가 있는 가파도 마을 길’이라고 쓰인 하얀 벽이 여행자들을 반겼다. 이 골목을 지나 제주올레길 10-1코스이기도 한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파도가 바람에 밀려 빠른 속도로 바위에 달려와서 부딪쳤고, 빠른 속도 때문에 파도는 위로 높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높이만큼 포말이 주변으로 크게 퍼지곤 했다. 마치 누군가가 쥐고 있던 작은 다이아몬드 방울을 한 움큼씩 허공에 흩뿌리는 것처럼, 비취색 물방울이 넓게 퍼지며 반짝거렸다. 파도는 매번 다른 높이로 바위에 철썩 엉겨서 다른 모습으로 부서지곤 했다. 바다가 만드는 다양한 표정에 끌려 바람 속에 한참 동안 서서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닷가에서 벗어나 섬을 가로질러 ‘가파도 소망전망대’에 이르렀다. 전망대에 섰더니 가파도의 친구인 마라도가 보였다. 가파도는 너른 평지로 이루어져서 바다와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섬이다. 고요한 수평선 위에 산방산, 송악산이 솟아있다. 봄에는 청보리가 넘실거릴 밭 너머에 제주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주민들이 바닷일로 바빠서 씨앗만 뿌리면 잘 자라는 보리를 심었다고 한다. 돌보지 않아도 자라는 보리가 지닌 생명력의 씨앗을 발견했다. 때 이르게 파란 싹을 쫑긋 내밀고 세상 구경을 하는 보리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 보리가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며 넘실거릴 풍경을 상상했다. 아무리 눈을 돌려도 빽빽한 아파트 숲과 건물 숲인 서울에서 보기 힘든 여백의 미를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눈을 뜨니 소망전망대에 묶인 띠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소망 띠에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났다. 바람 속에 버틴 시간만큼 띠 가장자리가 해졌다. 가깝고도 먼 섬에 들렀던 사람들이 소망 자락을 묻어두고 집에 돌아가서 그 시간만큼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소망을 품고 있을까? 아니면 소망이 이루어져 더는 소망이 아닐까? 소망도 파도처럼 강렬하게 몰아쳤다가 어느 순간 잦아들어 물러가곤 한다. 간절함을 담아 소망을 적은 마음은 행동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는 까닭이다.
소망전망대를 한 바퀴 돌아서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청보리가 없는 1월 가파도의 대표 얼굴은 골목이었다. 골목마다 ‘껍데기들’이 조용한 축제를 벌였다. 적막할 뻔했던 골목길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했다. 돌담에 뾰족뾰족 뿔이 달린 소라 껍데기, 반짝거리는 전복 껍데기, 크고 작은 조개껍데기 등을 붙여 시선을 빼앗았다. 돌담이 미소 지으며 윙크를 보냈다. 이보다 아름다운 벽 장식이 있을까? ‘껍데기’의 재발견이었다. 소라, 전복, 조개가 품은 내용물만이 일용한 양식이고, 껍데기는 쓰레기라는 고정관념을 부수는 순간이었다. 마을 표정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온다. 돌담을 꾸민 사람들의 기운을 떠올리자 갑자기 흥 게이지가 올라갔다. 어떤 곳에서는 면장갑을 둥글게 말아서 안에 흙을 채워 꽃에게 집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이 담긴 단아한 골목 구석구석이 다 내 차지였다. 나만을 위한 조용한 축제의 성찬을 느긋하게 즐기다가 문이 굳게 닫힌 ‘가고파다방’ 벽에서 ‘말의 꽃’을 만났다. ‘모든 것의 시작은 표현입니다. 은경아, 너 사랑해! 말이 꽃으로 피어납니다.’ 내 마음에서도 꽃이 피어났다.
50+에세이작가단 김남금(nemon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