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가르쳐 주는 너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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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는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영감님 (요즘은 한 유명 가수 덕에 테스형으로 친근하게 불리어 진다)이 말씀하신 것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경구이다. 아마 인류사에서 전해지는 말 중 가장 많이 쓰여진 말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본래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적힌 말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인지되고 있다. 아마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대화법인 산파술로 이 말을 많이 전달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말로 회자된 듯하다.
재미난 얘기가 있다. “너를 알아라”라고 설파하는 그에게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은 자신을 잘 아십니까?” 그가 웃으며 답했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읽는 수없이 많은 도서도 결국은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성찰의 과정이다. 내가 활동하는 독서 모임에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저술한「나는 누구인가 (Wer bin Ich?)」라는 책으로 독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34가지의 질문들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인데 저자는 책 말미에 “새로운 것에 관심을 잃지 마시고 여러분의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시는 기쁨을 누리시고 여러분의 삶을 채우기에 하루하루가 빠듯하시기를 빕니다.”라는 글로 마무리한다. 그날의 독서 모임은 책 내용 보다는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고 건강 나이에 대해 얘기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말이지. 이게 말하는 만큼 쉽지 않은 거다. 자신의 정체성을 안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은 것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간다. 열심히 활동하는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을 보며 몇 가지의 예를 찾아본다.
“나는 목소리가 낭랑하다고 선생님이 책 읽는 것을 내게 시키셨지”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얼 만드는 것 좋아해서 공작 시간이 젤 즐거웠어”
“나는 말이야,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지금도 늘 흥얼흥얼해”
“나도 있다, 나는 사회자 역할을 잘하지, 어떤 행사든 진행을 도맡아 했어”
“나도 뭐가 있을 텐데, 나는 정리하는 일을 잘했던 것 같아”
무언가 있다. 자신을 잘 돌아보면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이 늘 칭찬 받거나 주위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나를 안다는 것은 거창하게 철학적인 본질을 찾아가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은 것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교사 시절 내가 맡았던 반에 심하게 말썽쟁이가 있었다. 늘 친구들과 싸우고 교실의 무언가를 깨고 어지럽히고 결석, 지각을 다반사로 해 담임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플 정도의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자세히 관찰하였는데 미술 시간만 되면 흥미 있게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난히 말을 안 듣는 친구라 속을 지독히도 썩였는데 학기 말에 전해주는 생활 통지표의 학부모에게 보내는 담임의 글에 그 아이의 장점을 마음을 담아 적어 주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매우 소질이 있어 보인다는 칭찬의 글을 적고 끝에 조금 부산해서 그런 면만 주의한다면 친구들과도 잘 지낼 것이라는 당부의 말을 적었다. 방학을 마치고 개학이 되었는데 녀석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이거 선생님께 드리는 거예요” 하면서 그림을 그려온 것이었다. 선생님께 학교 다니면서 칭찬을 처음 들었다는 말과 함께. 내가 교사 생활을 마치고 전직을 한 이후 들은 말로는 그 제자가 미술대학에 진학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늘 떠올리는 예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냥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쉬운 것들. 수다를 너무 떨어 친구들에게 늘 타박을 받은 친구는 그 수다의 덕으로 남들 앞에 서서 말로 먹고사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타인의 차이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작은 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활동하는 몇 분의 예는 결과가 참 좋은 사례이다. 목소리가 좋은 그분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봉사 단체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분은 작은 공방을 만들어 창업의 길을 걷고 있으며 강사 활동도 겸하고 있다. 다들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들을 찾아가면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은 것만 해도 큰 행복이다. 남은 긴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함께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테스형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
이제 차분히 시간 여유를 두고 자신을 찾아가 볼 일이다. 그리고 타인이 해주는 너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