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잠 못 들고 밤을 새우는 날이 있다. 소풍가기 전 날이다. 옆집에서 빌린 니꾸사꾸(룩색)에는 콜라와 사이다 그리고 구운 오징어와 과자가 잔뜩 담겨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평소에 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아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일어나면 한 쪽에 삶은 계란과 김밥이 놓여 있다. 김밥에는 시금치와 다꽝(단무지) 그리고 무엇보다 계란 프라이가 반드시 들어간다. 당시에는 가장 맛있는 음식이 바로 소풍가는 날 먹을 이런 음식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삼삼오오 친구들과 모여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는 변도라고 했다. 간혹 부잣집 아이들의 변도에는 계란 프라이가 올려 있어 보는 아이들의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계란 프라이는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올리지 않고 밑에 깔아 오는 친구가 있었다. 혼자만 몰래 먹으라는 엄마의 수준 높은(?) 배려가 밥과 프라이의 서열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모를까.

 

아버지 생신에는 어김없이 동네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곤 했다. 선물이라고 해야 담배 한 보루, 정종 한 병, 돼지고기 두어 근 또는 계란 한 꾸러미가 전부였다. 계란은 짚으로 만든 꾸러미에 정성껏 담겨 있었다. 다음 날 계란으로 찜을 만들었다. 계란찜은 아버지 앞에 특별히 놓였고 아버지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눈을 흘기는 엄마를 피해 한 숟가락 떠먹을 수 있었다.

 

 

이처럼 계란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특별한 음식이니 맛도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계란이 들어간 음식이 흔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계란 프라이는 몸에 좋지 않아 먹지 말라는 말도 생겼다. 실은 계란뿐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모든 음식이 흔해졌다.

 

음식이 흔해지면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음식이 흔해진 것은 대량생산을 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닭은 배터리 케이지에서 하루 종일 먹기만 하다가 적정 시기가 되면 도축됐다. 닭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은 조류독감이다. 조류독감은 닭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전염되어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양성반응이 나타나면 모두 살처분 하곤 했다. 양계농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 조류독감이다. 조류독감은 철새로부터 전염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이나 동물보호 측면에서 철새는 보호되어야 마땅하나 해마다 조류독감을 퍼뜨림으로써 심각한 문제를 안기고 있다. 작년에는 조류독감으로 삼백만 마리를 넘게 살처분했다. 올 봄에도 조류독감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살처분은 이어졌다. 육계파동이 시작됐고 계란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 판에 삼천 원 대에 팔리던 것이 무려 일만 원이 넘었다. 미국에서 태국에서 바다 건너 수입된 흰 계란이 수없이 공급됐다. 몇 달 만에 계란 가격이 조금 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량생산의 희생양인 닭은 에그포비아(계란공포증)를 불러일으키며 인간에게 역습을 시도했다. 인간이 만든 축산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을 닭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살충제의 오남용뿐일까. 엉터리 친환경 농장인증제도, 경로도 추적하지 못하는 후진적 유통 시스템. 이 모두 대량생산에 매달려 배터리 케이지에 닭을 가두어 놓고 방치한 때문이라 하면 양계업자나 관련 공무원들은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어느 농장주는 살충제를 파리약인줄 알고 뿌렸다고 변명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다시 계란 가격이 치솟고 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계란을 이용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자영업자나 계란을 적어도 하루 하나 이상은 먹어야 했던 소비자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계란 가격이 치솟았다고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에그포비아를 증거 삼아 닭에게 책임을 물을까. 닭과 계란은 여전히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