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부탄 여행 셋째 날, 푸나카
오늘도 밤새 비가 많이 내렸다.
걱정이 되어 창밖을 내다보니 하얀 운해(雲海)가 산허리를 휘감아 올라가고, 지붕에서는 낙숫물이 조용히 떨어진다.
“빗방울이 잦아들겠지”
푸나카의 불교 수도원
푸나카의 숙소를 출발하여 처음 도착한 곳은 ‘상첸 돌지 룬드럽 촐링’ 비구니 승가대학이다.
이곳에는 네팔 양식의 하얀 초르텐과 대형 마니차가 있는데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소원을 빈다. 법당 입구에서는 비구니 스님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는데 불교 신자인 엄마를 위해 작은 것 하나를 구입했다.
“엄마! 저희들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이 수도원은 현왕(現王)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의 아버지인 선왕(先王) ‘지그메 심기에 왕추크’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현왕의 어머니가 지었다. 선왕의 왕비가 지었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선왕의 부인이 4명이기 때문이다.
선왕의 가족사진, 윗줄의 중앙에 현왕과 선왕, 윗줄의 청색 옷 입은 4명이 왕비들
선왕이 결혼을 할 때, 어느 승려가 ‘4명의 부인을 두어야 나라가 번영한다.’고 예언을 했다. 왕은 자신이 사랑한 여성의 자매 모두를 부인으로 맞아들여 왕비가 4명이 되었다. 현왕은 셋째 부인의 아들인데, 가족회의를 거쳐 갈등 없이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수도원을 내려오면서 강을 바라보니 물살이 거칠다. 계속 비가 왔기 때문이다. 강 건너편의 산에 있는 ‘남기엘 초르텐 수도원’을 가야하는데 다리가 도통 보이질 않는다. 한참을 차로 달리니 작은 현수교가 보인다.
“이 흔들거리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구나. 그래도 천만 다행이다. 비가 오지 않으니”
수도원으로 가는 산길 옆으로 논이 계단 모양으로 이어지고, 고추와 가지를 재배하는 밭과 염소도 보인다. 자그마한 냇가에는 홀딱 벗은 몸으로 물장난을 치는 꼬마 녀석들도 보인다. 갑자기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 부근의 개울에서 사촌들과 놀던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경험은 많이 했는데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적기 때문일 겁니다. 추억이 많아야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해지지요. 이번 여행도 추억으로 남겨야겠어요.”
수도원 중앙의 4층 건물에는 몇 년 전 홍수로 피해를 입은 사원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1,2,3층의 불상은 힌두교 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모습의 부처 변신이고, 옥상에는 진심으로 기도하면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불상이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불상에 시주를 하고 정성껏 절을 하면서 기도를 하였는데, 어느 중년의 여자가 서럽게 울면서 절을 한다.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기도가 끝난 뒤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안아드렸다.
“좋은 곳으로 가시어 자식들 모습을 내려다보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
강가에서의 피크닉
산을 내려오니 시원한 바람이 분다. 산을 오를 때 흘렸던 땀이 바람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바뀌고, 강가에 오니 알록달록 파라솔이 보인다. 산행으로 출출 했는데 야외 피크닉이 기다리고 있다.
여유로운 식사와 휴식~ 드디어 편안한 힐링의 시간이다. 걷지도 않고 구경도 안하고 그저 강을 바라보면서 먹고 웃는다. 모두들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팀푸로 가는 길
식사를 마치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도출라 고개를 넘어 팀푸로 이동한다. 오늘도 고개는 안개로 뒤덮여 있고 히말라야는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귀한 것은 함부로 보이지 않는 법!
팀푸 숙소로 가는 도중에 좀 의아한 광경을 보았다. 군부대의 정문 중앙에 현왕의 어린 아들 사진이 붙어 있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났다고 하는데 . . . 막강한 군사력을 내세워야 할 군부대가 어린 왕자의 사진을 걸어놓다니???
궁금증을 못 참는 성격이라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저희들은 왕의 가족을 사랑하고, 왕자인 베이비도 사랑합니다. 군부대? 상관없지요.”
우문(愚問)에 대해 명쾌하고 단호하게 답을 한다. 진심일까?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 입헌군주국인데 선왕과 현왕을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수준으로 숭배하고 존경한다. 당연히 왕자도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자꾸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건 왜 일까? 나만 그런가?
오늘 묵을 숙소는 여행 중 가장 품격 있는 4성급의 Namgay Heritage Hotel이다. 인도 관광객과 우리나라에서 온 불교 성지 순례자들이 많이 보인다. 호텔 안에는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고 4층에는 법당도 있다. 부탄의 대부분의 사원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호텔 안에 있는 법당이라 허락을 받고 들어가 촬영을 하였다.
내일은 고도 3,988m인 체레라 고개를 가야 한다. 고산병 때문에 약을 미리 먹어야 하는지 그냥 버텨도 되는지 걱정이 앞선다. 온수로 목욕을 하고 일찍 자는 것이 가장 좋은 대비책이겠지.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든다.
I 부탄 여행 넷째 날, 하(Haa)를 거쳐 체레라 고개로
멋진 호텔에서의 깔끔한 아침 식사! 흰죽과 사과, 배 등의 과일과 더불어 그 귀하다는 돼지고기도 있다. 불교 국가인 부탄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한다. 고기를 먹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도축하여 수입한 것만 먹는다.
오늘은 팀푸를 출발하여 부탄의 서쪽에 있는 하(Haa) 지역으로 간다. 밖에 나오니 파란 하늘에 구름이 몽실몽실~ 산뜻한 출발을 예고한다.
하(Haa) 지역
하 지역은 인도, 중국과의 국경이 있는 곳으로 인도군과 부탄군이 함께 중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국경을 지키고 있다. 부탄은 인도와 우호적이고 인적 물적 교류도 활발하다. 하지만 티베트처럼 중국에 나라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고 중국과는 적대 관계이다. 이 지역은 2002년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군사 지역으로, 다른 지역에서 거의 보지 못한 오토바이 탄 군인과 경찰이 눈에 많이 띤다.
마을과 농경지는 깊은 골짜기 안에 있고 도로는 산허리를 휘감아 돈다. 터널을 만들면 빨리 갈 수 있겠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길은 계속 S자로 이어진다. 가끔 산사태로 흙과 돌이 흘러 내려와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인부의 피부색을 보니 검다. 인도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여인들도 보인다. 이들은 움막과 같은 임시 숙소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면서 고된 일을 하고 있는데, 자국의 두 배인 인건비를 이곳에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이 지역은 해발고도가 2,500m로 높아 여름에도 서늘하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감자, 밀, 옥수수, 양배추 그리고 사과, 자두, 살구, 배 등의 과수가 잘 자란다. 소규모지만 소와 말도 방목으로 키우는데,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집을 짓는다고 한다. 즉 부탄의 가옥은 대부분 전통 양식 그대로 짓는데 3층이다. 1층은 가축을 쉬게 하는 공간이고, 2층은 곡식 등 식량을 보관하며, 3층은 부엌과 침실이 있는 주거 공간이다. 요즈음은 가축을 기르지 않는 가구가 많아 2층으로 짓거나, 3층 집에 사는 경우는 1층을 상점으로 활용한다.
멀리 절벽 위에 아름다운 흰 건물이 보인다. 모두들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이 풍광을 사진에 담는다. 이 건물은 원래 감옥이었는데 수도원으로 바뀌었다. 죄수들이 확 줄었나보다. 참 좋은 일이다.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
체레라 고개(Chele La Pass)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체레라 고개로 올라간다. 3,988m에 위치한 매우 높은 고개인데 가는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하다. 도로 밑은 천 길 낭떠러지이고 고목들이 하늘을 찌르듯 뻗어 있다. 차 안에 있는데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고산증이 찾아올까 두려워 소화제를 먹고 심호흡도 해본다.
비도 안 오니 운이 좋으면 히말라야의 고봉(高峯)을 볼 수 있으련만, 사방이 안개로 뒤덮여 있다.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은 수목 한계선보다 높은 곳이야”
“이곳의 주인은 야생화와 이끼와 바람인데, 인간이 욕심을 내면 안 되지. 난 손님이야 . . . ”
고개 정상에는 오색의 룽다(Lungta)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안개 속에 젖어 있다. 흰색은 바람, 황색은 대지, 청색은 하늘 또는 물, 적색은 불, 녹색은 자연 또는 땅을 뜻한다. 흰색의 룽다는 죽은 이를 위해 7개씩 일곱 번에 걸쳐 49제를 드리듯이 만들어 세워놓는다고 한다. 갑자기 경건한 맘이 든다.
“죽은 이의 영혼이 바람을 타고 온 세상을 떠돌겠지? 그러다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나면 어떤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까?”
체레라 고개 바로 밑의 전망대에 차가 멈춰 섰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갑자기 함성을 지른다.
“백두산보다 높네~ 맞아! 한라산의 2배가 넘는 곳에 와 있어”
우리를 실은 차는 다시 공항이 있는 파로의 숙소로 향했다. 비록 걸어서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3,988m 고지에 가보았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I 부탄 여행 다섯째 날, 파로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를 보니 흙탕물이다. 어쩌지? 팀푸의 4성급 호텔에서도 물이 흐렸는데 . . .
부탄은 지금 우기이기 때문에 하천의 물이 모두 흙탕물이다. 게다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넓다. 식수는 생수로 대신하지만 샤워 물과 변기 물은 정수하지 않은 물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참으로 산 좋고 물 좋은 나라이다.
하지만 이 물이 약품으로 소독한 물보다 더 깨끗할지도 모른다. 공장이 거의 없는 청정 지역의 약초 우린 물이고 흙 속의 미네랄이 듬뿍 들어있는 물!
그래도 마지막은 생수로 얼굴을 헹군다.
오늘은 부탄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탁상 사원(Taktsang Gompa)으로 가는 날이다.
부탄에는 불교 사원을 의미하는 용어가 세 개 있다. 방어에 유리한 요새에 위치하고 행정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는 종(Dzong), 불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마을에 있는 사찰인 라캉(Lhakhang), 수행자들을 위한 은둔의 사원으로 깊은 계곡이나 절벽에 있는 곰파(Gompa)가 있다. 탁상 곰파는 절벽에 있다.
탁상 곰파에 간다고 아침부터 들떠 있었지만 3,140m 고지에 위치하고 있어 갈 길이 걱정이다. 2,600m 높이에 있는 입구에서 출발하여 산 중턱에 있는 카페테리어(2,940m)까지는 걸어도 되고 말을 타고 가도 된다. 말을 타면 약 40분 올라가는데 대신 1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말을 타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달러를 주고 빌린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른다.
밤에 비가 와서 진흙길이 많아 미끄러운데 말들은 주인의 신호에 따라 조심조심 산길을 오른다.
"수고가 많구나. 주인에게 정성을 다 하느라고“
“미안하구나. 힘들게 해서”
말에서 내리니 잠시 쉬어가는 카페테리아가 보인다. 이곳에서 커피나 차 그리고 비스켓을 먹으면서 충분히 쉬어야 탁상 사원까지 걸어갈 수 있다. 여기서부터 탁상 사원까지는 누구든 걸어야 한다.
고산병이 두려워 사람들은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주변에 고목과 야생화들이 시선을 사로잡으니 저절로 천천히 걷게 된다. 가끔 고개를 들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탁상사원이 보이고 연신 감탄사가 나온다.
"와우~ 어떻게 저런 곳에 사원이?"
그런데 올라가야 할 길이 내려간다. 지그재그로 오르락 내리락~ 1,600개의 계단이 이어진다.
산을 넘고 넘어 깊은 골짜기에 다다르니 거대한 암벽에서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바로 옆 수직 절벽에 탁상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드디어 탁상 사원에 도착한 것이다. 가이드가 입장 안내를 한다. 신발 벗고 모자도 벗고 상의는 긴팔의 옷으로 입고 가방도 내려놓고 들어가라 한다.
탁상 사원은 8세기 초 티베트에서 부탄으로 불교를 처음 전래한 ‘파드마 삼바바(구루 린포체)'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파드마 삼바바는 히말라야 전 지역에서 명상을 통해 수행을 하였는데 그 지역 중의 하나가 탁상 사원이 있는 동굴이다.
그는 '타시 키이드렌' 이라는 여인을 암호랑이로 변신시켜 올라타고 이곳으로 날아와 동굴에서 석 달 동안 수행을 했다. 그런 연유로 '호랑이 둥지'라고도 부른다.
그가 죽은 후에도 많은 성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수행을 하자 1694년 5개로 이루어진 사원이 건립되었다.
1998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파드마 삼바바를 모신 둘째 사원만 불타지 않았고, 현재는 12개의 사원으로 복원되었다.
파드마 삼바바는 히말라야 전 지역에서 제 2의 석가모니로 추앙을 받았는데, 금강승 불교의 창시자이자 부탄 불자들의 절대적 신앙의 대상이다.
대부분의 부탄 사원의 법당에는 부처님 불상 좌측에 부탄의 국사(國師)인 파드마 삼바바 상을 모시고, 우측에는 턱수염이 멋있는 부탄의 국조(國祖)인 샵드룽 나왕 남갤이 모셔져 있다.
샵드룽 스님은 티베트 내 불교 종파간의 갈등을 피해 부탄 지역으로 와 정착을 하였는데, 티베트군의 침공을 막아내어 현지인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요새에 푸나카 종과 같은 많은 종을 만들고, 불교 계율에 입각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또한 1655년 여러 부족을 통일시켜 봉건주의 부탄을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는 달라이 라마가 있는 티베트와 달리 종교의 수장인 제켄포(Je Khenpo)와 정치 수장인 드룩데씨(Druk Desy)의 이원 정부를 구성하여 운영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온몸에 땀이 가득하다. 지팡이를 돌려주고, 잠시 기사와 핸드폰의 사진을 서로 보여주면서 수다를 떤다. 부탄의 언어는 ‘종카 어’인데, 젊은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부담 없이 잘 구사한다. 발음이 좀 거칠지만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히말라야에 묻힌 은둔의 나라라고 하는데 영어는 왜 잘 할까?”
부탄은 인도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현왕은 부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미국의 대학을 거쳐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공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왕비는 부탄의 동부 지역에 있는 ‘붐탕’의 평민 출신인데,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부탄의 학교에서는 ‘종카 어’를 배우는 국어 시간과 국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로 수업을 한다. 현재 영어는 부탄에서 공용어이다.
트래킹을 마치고 파로 계곡에 있는 농가(農家)에 도착하니 무지개가 뜬다. 우리의 여행을 축복해 주려고 부처님이 보내 주셨나보다.
이곳에서 우리는 부탄의 전통차인 쑤자(Suja)를 마셨다. 버터와 소금을 녹인 밀크 티인데 로스팅한 쌀을 듬뿍 넣어 고소하고 부드럽다. 한 잔으로 만족하기에는 중독성이 강하다. 하루 종일 트레킹과 차량 이동으로 지친 몸이 쑤자 한 잔으로 풀어진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어온다. 부탄의 전통 목욕인 Hot stone 목욕이 기다리고 있단다. 나무로 만들어진 1인용 욕조에 약초 잎을 띄운 뜨끈한 물이 담겨 있다. 20분 동안 몸을 담궜는데 벌서 피로가 싸악 가신다.
"넘 시원하고 산뜻하다."
트레킹으로 흘린 땀이 모두 씻겨가고 보송보송한 피부가 기분을 up시킨다. 시원한 맥주가 땡긴다.
숙소로 돌아와 부탄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긴다. 별이 보이고, 벌레가 울고, 아직도 강물이 소리 내어 운다. 온전히 자연 속에 묻혀 있는 기분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면서 욕심 없이 더불어 사는 부탄 사람들이 조금씩 부러워진다.
I 부탄 여행 마지막 날, 파로
드디어 부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사롭고 하늘은 높고 뭉게구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숙소의 뜰에는 사과나무, 배나무들이 소담스런 열매를 달고 있다. 모든 과일들의 크기가 매우 작다. 우리나라 과일가게에서는 내놓고 팔지도 않는 크기이지만 크게 욕심 내지 않고 자연이 주는 대로 감사하면서 먹는다.
숙소 앞의 강 건너편에 파로 국제공항이 있어 비행기의 이착륙을 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 활주로가 하나인데 2.7km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조건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짐을 꾸리고 다소 늦은 10시에 키츄 사원(Kyichu Lhakhang)으로 출발했다. 이 사원은 7세기 티베트를 통일한 왕인 ‘송첸감포’에 의해 지어진 아주 오래된 작은 사원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사는 악마의 여신을 누르기 위해 히말라야에 108개의 사원을 짓기로 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 사원이다. 부탄에서 이 사원과 더불어 오래된 사원으로 알려진 것은 8세기에 지어진 붐탕에 있는 쿠르제 사원(Kurjey Lhakhang)이다. 이 사원은 일정 상 가지 않았다. 푸나카에서도 10시간 이상 걸리고 우기에는 도로 사정이 아주 좋지 않다.
부탄의 사원에서 관광객이 제사를 지내는 광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유서 깊은 사원에서 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몇 백 년 동안 절을 하여 움푹 파인 디딤발 자리를 보니 저절로 손을 합장하게 되고 발걸음도 조심조심 옮기게 된다. 작은 사원이지만 이곳에서 비는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사원의 초기 건물과 불상은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899년 복원되었다. 'ㅁ'자 모양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중정(中庭)에 귤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겨울이 추운데도 연중 귤이 열리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건물로 막혀 있고 북쪽으로 바짝 부쳐 남향으로 나무가 서 있다.
“차가운 북풍을 받지 않고 따뜻한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가능하겠구나~”
부탄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파로에서 가장 큰 사원인 ‘파로 종(Paro Dzong)’으로 향했다. 1644년 티베트가 침략을 해오자 부탄의 영웅인 샵드룽이 파로를 지키기 위해 1645년 지었는데, 사원과 행정기관이 함께 있다. 파로 종은 부탄의 전통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된 건물이며 영화 ‘리틀 붓다(Little Buddha)’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1897년 진도 8.7의 강진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1907년 대화재가 지나갔지만 이듬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져 지붕이 있는데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파로 종도 푸나카 종처럼 강을 끼고 있어 강이 해자(垓字) 역할을 하고 있다.
파로 종은 높은 곳에 있어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녀석이 있다. 당나귀 한마리가 묶여있다. 포토 존? 쓰담쓰담 하면서 사진을 찍어본다.
파로 종에 도착하니 마당 주변의 통로에 그려진 벽화가 화려하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세계를 상세하게 표현한 불화인데, 글을 읽지 못하는 불자에게도 불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리라.
계단을 올라 법당에 도착하니 파로 계곡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부탄에서 드물게 넓은 평지가 있어 큰 마을이 들어서 있다.
파로 종에는 14세의 모습을 한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는데, 과거에는 숙박하면서 동자승들이 불경 공부를 하였지만 지금은 불경 공부만 하는 곳으로 이용된다. 법당의 바닥이 큰 통나무 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축 당시 나무 그대로라고 한다. 바닥이 맨질맨질 하면서 광택이 난다. 얼마나 많은 동자승들이 이 마루 위에서 불경을 공부했을까?
파로 종을 마지막으로 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전 쇼핑을 하였다. 선물 가게에서 손으로 직접 만든 머플러, 목걸이, 팔찌 등을 사고 마트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도 샀다.
이젠 우리나라로 돌아간다.
활주로 부근에서 바로 계단을 올라가 비행기에 탔다. 30초 만에 이륙한다. 하늘의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뜬다.
마지막까지 행복한 여행을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