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의 피스테라
떠날 수 있고 떠나야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
▲나는 가을을 즐기기보다 앓는 편이었다. 들국화 향은 아렸고 희고 여린 꽃잎마저 날카로운 모서리처럼 쓰라렸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가을이 조금 익어가는가 싶으면 문간에는 벌써 겨울이 서성거린다. 짧아서 더욱 애틋하고 아름다운 이 계절을 나는 사랑했다. 아무리 여러 번의 가을을 채워도 절대 가득해지지 않는 심연을 두고 거기서 나는 시리고 아름다우며 채도 높게 가을을 익혀갔다. 어떤 쪽인가 하면, 난 가을을 즐기기보다 앓는 편이었다. 어려서는 서울 근교 마을에 살면서 지천인 가을 국화에 마음이 베이곤 했다. 상여 나가는 길가에 듬성듬성 하얗게 흔들리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이답지 않게 들국화에 집착했다. 꽃이 모여 핀 곳에 누우면 국화 향이 가슴 깊은 데까지 따라 들어와 아렸다. 희고 여린 꽃잎마저 날카로운 모서리처럼 쓰라렸다. 그렇게 가을마다 저리도록 가을을 앓아왔다. 장성해서 도시로 나가 살 때도 들국화는 가을마다 기억 속에서 피고 지며 무병처럼 가을 앓이에 불을 지폈지만 바쁜 일상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가을 앓이를 적정선에서 막아내는 저항력이었다.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큰 고비를 맞던 때였다. 하얗게 타버렸고 힘겨운 책임을 내려놓았을 때 내 존재의 무게와 가을 앓이를 눌러주던 저항력도 함께 맥을 놓았다. 가을 앓이가 다시 시작되자 견딜 수 없이 떠나고 싶어졌다. 그때야 비로소 나 자신이 떠날 수 있고 마침내는 떠나야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한 달 동안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고 저항 없이 가을을 온전히 앓아보기로 했다. 일을 두고, 책상을 비우고, 집을 잠그고 떠났다. 여름 휴가조차 이틀 사흘씩 쪼개어 쓰며 살다 보니 두고 비우고 잠그고 떠나는 일이 여행지의 낯섦보다 더 두렵고 생소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천년의 가을이 켜켜이 쌓여 익어가고 있었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천년의 가을이 익어가는 길
마침내 파리와 마드리드를 거쳐 ‘산티아고 가는 길 Camino de Santiago’에 섰을 때 나는 준비되지 않은 순례자였다. 순례는 종교인이 신심을 담아 성지를 찾아 참배하는 걸 말한다. 나도 순례길에 서기는 했지만,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면 이제껏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라고 한 어느 교황의 선포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이 길을 걸으며 인생 문제를 풀어 답을 얻겠다는 당치 않은 욕심 따위도 없었다. 그냥 벗어나 떠나고 싶었다. 번잡하고 갈피 없는 마음을 비워내고 다독이며 새로운 생각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순전히 개인적인 필요를 좇아 떠난 여행이었다.
그 길에는 천년의 가을이 켜켜이 쌓인 채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9세기 무렵 예수의 십이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뒤로 성쇠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순례길이니 그 길 위에 내린 가을이 천 번은 넉넉히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빛깔과 냄새와 질감이 낯선 그 길을 걸으며 나는 그해 가을을 온전히 흥건하게 앓아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나는 다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걸었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마음을 지고 걸은 길
그 길을 나는 다리보다 마음으로 걸었다. 두고 온 줄 알았던 생각들이 줄곧 따라다니는 바람에 내내 배낭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지고 걸었다. 낯선 길 위에 그침 없이 비가 내렸고, 두 시간에 한 번쯤 나타나는 식당 겸 주점 겸 카페인 ‘바’ 말고는 잠시 서서 비를 그쳐갈 처마 하나 길가로 내어 지은 집이 없었다. 그 길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아픈 다리가 아니라 뜨거움을 잊은 심장이었다. 그 길에서 가장 가여웠던 건 찬 가을비에 젖고 물집이 잡힌 발바닥이 아니라 울타리 밖의 짐승처럼 배회하는 내 영혼이었다. 무겁고 안타깝고 가여웠던 그것들은 걷는 내내 타인의 것처럼 굴며 겉돌았다. 그러나 그 길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거쳐 피스테라에서 끝났을 때 내 심장과 마음과 영혼은 다시 나와 함께 새로운 시작점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그해 가을은 내 삶의 변곡점이 되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날도 밤새 비가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대성당 맞은편 순례자 숙소 다락방에서 잠이 깼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수녀원의 아침
길은 사람이 살아온 궤적이고 살아가는 노정 그 자체이다.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다. 길을 걸으면 미래는 끊임없이 다가와 현재가 되고 동시에 과거가 된다. 걸어온 길과 걸어가는 길 그리고 걸어갈 길은 점점이 지도에 찍어 놓은 마을들을 이으며 하나의 선분을 그리고 있다. 마침내 더는 이어지지 않는 선분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나는 과연 목적지에 이르렀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그중에서 프랑스 길을 100여 km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고, 다음 날 아침, 이끼가 잔뜩 낀 대성당 옆 옛 수녀원 다락방에서 잠이 깨었다. 프런트에서 '페레그리노!' 한 마디 던지면 싼값에 묵을 수 있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였다. 하나뿐인 작은 창이 천장에 닿을 듯 높게 달려있었는데 위의 절반은 처마가 가리고 있고, 나머지 반으로는 질펀한 비의 질감을 방안 가득히 불러들이고 있었다. 하늘 표정이 여전한 걸 보니 어제와 잇닿은 시간 속 같은 길 위에 있는 건 맞나보다 싶었다.
▲“길은 끝이 없다.”라는 어릴 적 작문이 이날 아침 계속 순례를 이어가야 할 명분이 되었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길은 끝이 없다
아무리 해도 꼭 닫히지 않는 욕실 문 안에 구부정하게 서서 몸을 닦다가 문득 초등학교 삼학년 때 한학자였던 외조부와 함께 지낸 '외가에서 두 달 살기'의 기억을 떠올렸다. 긴긴 겨울방학 동안 외가에서 외조부를 선생으로 모시고 한자와 붓글씨 공부를 했는데 하루에도 여러 번 숙제를 내시곤 했다. 제법 공을 들여야 할 수 있는 과제에 내가 시간을 쓰는 동안 외조부는 서안에 쌓인 소설책을 내려 읽으시곤 했다. 하루는 '길'을 주제로 글짓기를 하라는 숙제를 내셨는데 무슨 생각에선지 난 '길은 끝이 없다'라는 단문을 적어내었고, 사육신 중 한 분 성삼문의 직계 후손인 외조부는 밑도 끝도 없는 그 글에 감탄하며 칭찬하셨던 기억이 선명하게 돋아났다. 초등학문에 무슨 깊이가 있었을까만은 순전히 우연으로 지어내었더라도 '길은 끝이 없다'라는 짧은 글은 이날 아침 순례를 이어가야 할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시간이 곧 길이며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길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피스테라는 순교자 야고보의 시신이 이곳 해안에 닿았다는 설화가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피스테라로 갈 결심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가 산티아고 대성당이기는 하지만 일단 순례를 마친 순례객들은 바다로 이어진 길을 따라 이름 그대로 땅끝마을인 피스테라(혹은 피니스테레)나 야고보와 성모 마리아의 돌 배 전설이 파도와 맞닿아 있는 묵시아까지 순례를 이어가기도 한다.
나는 두 곳 중 피스테라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묵시아에 가고 싶었다. 야고보 사도가 선교할 때 성모 마리아가 타고 나타난 돌배가 상징물로 남아 있다고 하고, 피스테라의 선명한 느낌과 다르게 차분하고 침착하며 소박하다고 들어서 왠지 순례 분위기에 더 어울릴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혀 연관 없음이 분명하지만, 동네 이름 ‘묵시아’를 입안에서 굴리고 있으면 신약 성경 마지막 책의 다른 이름인 묵시록(默示錄)이 연상되는 것도 끌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보다도 묵시아 바닷가 성당에서는 매주 수요일 저녁 미사 때 'The Sound of Silence' 곡에 맞춰 주기도문을 드린다는 여행 후기를 보고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수요 미사에 꼭 참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편, 작은 어촌 마을 피스테라는 서기 44년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의 유해를 나룻배에 실어 보내자, 그 시신이 피스테라 해안에 닿았다는 설화가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무튼, 매 앞에 장사 없고 피곤 앞에는 만사 뜻 없는 법이어서 조금이라도 쉬운 길을 찾아 버스로 피스테라에 가기로 했다. 어차피 두 곳 다 순례의 시작점을 알리는 순례길 거리 원표 0.000km가 있는 곳이니 순례를 이어가는 의미로도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피스테라 절벽 위 등대에 오르는 길가에 거센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는 순례자의 상이 서 있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땅의 끝 바다의 시작 피스테라
피스테라는 산티아고에서 9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그다지 멀지는 않지만, 버스가 곳곳에 들르며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하염없이 가다 보니 피스테라에 도착할 무렵 멀미가 났다. 종점에 도착해 짐짝처럼 버스에서 굴러 내려와 맞은편 식당에서 한참 머리를 짚고 앉았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 순례의 종점이자 원점인 등대까지 다녀왔다. 등대로 오르는 길옆에는 힘들게 바람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의 상이 있다. 이날도 바람이 몹시 불어서 옛 순례자의 고난을 아주 조금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피스테라의 어둡고 거친 절벽은 땅의 끝이었고 바다의 시작이었다. 야고보 사도가 살던 때에는 스페인이 세상의 끝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 작은 동네를 땅끝이라고 부른다. 그 땅에 복음을 전하던 야고보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순교했고 다시 시신으로 이 땅에 이르러 순례의 종점이 되었으니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제자였던 셈이다. 그 절벽 위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거기서 나는 파스칼 메르시에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인물들을 생각했다.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원작으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 속 피스테라. 영화 속에서 프라두와 에스테파니아는 독재를 피해 밤새 달려 피스테라에 도착하고 거기서 헤어진다.
〈출처 : 영화 스틸 컷〉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피스테라
스위스 베른에 사는 고전문헌학자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빗속에서 포르투갈 여자를 만나고 나서 서점에서 우연히 갖게 된 책 <언어의 연금술사> 속 이야기를 좇아 포르투갈 리스보아로 야간열차를 타고 떠난다. 소설 속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젊은 의사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이야기 배경은 포르투갈 리스보아이지만 그중 한 장면은 스페인 피스테라까지 이어진다. 아마데우 드 프라두는 포르투갈 혁명의 시기에 지하 혁명군에 참여한다. 거기서 절친의 여자를 사랑하고 둘은 독재의 땅을 탈출해 밤을 지새우며 600km를 달려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절벽 위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토록 절실하게 달려와 간신히 도착한 땅끝에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바다를 건너 새 삶을 살자는 남자에게 여인 에스테파니아는 말한다. "그 여행은 할 수 없어요. 그건 당신의 여행, 오로지 당신 혼자만의 여행이에요. 우리의 여행이 될 수 없어요." 그렇게 그녀는 프라두의 여행에 동행하지 않았고. 뒷날 프라두는 <언어의 연금술사>에 이렇게 쓴다. "피니스테레. 그곳에서처럼 정신이 또렷하게 깨어 있었던 적은 그렇게 차분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알고 있다. 나의 경주는 끝났다는 것을……. 내가 언제나 달리고 있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경주, 경쟁자도 목표도 상도 없는 경주. -중략- 그때 읽은 신문에서 유일하게 아직 기억하는 단어 신기루, 환영.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거친 바람을 마주하며 피스테라의 절벽 끝에 서서 나는 어둡고 무거운 하늘과 숙명처럼 그 빛을 닮은 대서양을 바라보았다. 프라두가 자기 삶의 경주가 끝났음을 깨닫고 자기 삶을 신기루처럼 스러지는 헛된 형상이라고 여긴 순간 그 내면의 색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뒤로 피스테라 벼랑 끝 거센 바람 앞에 섰을 때 내 내면의 색과 모양은 어떠했던가 자주 생각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만난 푸른 들판.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묘사된 들판은 실제보다 푸르다
"묘사된 들판은 실제보다 푸르다."
이 글귀도 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에서 만났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책' 안에 담긴 글 한 줄을 가져다 실었는데 원전은 이러하다. "들판의 푸름에 대한 묘사에서 들판은 실제보다 더욱 푸르다. 상상 속에서 묘사한 꽃의 색깔은 세포의 실제 생명력 이상의 영속성을 갖게 된다." 이 말처럼 피스테라에 대한 내 묘사가 실제보다 짙게 착색되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다만 사진을 다시 꺼내 볼 때마다 내 기억 속 피스테라의 가을이 실제 그날의 빛처럼 짙고 선명하다는 것만은 확인하곤 한다. 기억 속의 여전히 선명한 푸르름이 나는 싫지 않다.
▲돌아오는 길에 되돌아본 피스테라 위로 은총 같은 빛내림이 내려앉고 있었다. ⓒ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길의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
책 속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에서 아마데우 드 프라두는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가는 여행”이라고 썼다. 지독하게 가을을 앓으며 이어갔던 그해의 내 여행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가는 여행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비를 맞으며 피스테라 도착하고 땅과 길이 끝난 자리에서 돌아섰을 때 “길의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라던 허병두 선생의 글처럼 거기서 내 삶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스테라를 돌아다 보았다. 멀어지는 피스테라와 인생처럼 격랑 이는 대서양 위로 빛내림이 은총같이 내려앉고 있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cbsann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