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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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짜 100세를 모른다.

누군가는 은퇴 후 경제를,

누군가는 나이 들면 찾아오는 질병들을,

누군가는 다가올 새로운 산업을 말한다.

100세, 진짜 모습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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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는 활기차 보였다. 오랜만에 점심이나 하자고 해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그는 막 노트북을 덮고 있었다.

비대면 강의를 준비하느라 강의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작업하던 참이었다고 했다.

30년간 봉직한 학교를 떠난 지 5년, 상희는 교직 경험을 살린 육아와 독서교육 강의로 평생교육시장에서 잘나가는 강사다.

올해는 새로운 강의 일정이 몇 개 더 잡혔는데, 코로나19로 대면 집체 강의가 어렵게 되면서 일부는 온라인 강의로 전환해서 운영한다고 했다.

 

 

 

 

곧이어 경화도 도착했다. 우리 세 사람은 비슷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다.

작년부터 경화는 일하는 딸을 대신해서 손주를 돌보는데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없어 집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상희와 경화 모두 지난해 11월에 만나고 못 만났으니 반 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모임을 되도록 자제하라는 지침에 중요하고 바쁜 일을 해야 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좀 더 참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모임을 미뤄왔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사태가 길어지고 출근과 등교 등 일상적인 모든 것들이 예정조차 어렵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에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강의는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지금은 언제 열릴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슷한 직종의 사람들이 ‘구글줌’이니 ‘구글클래스’니 하면서 온라인 강의로 수업 방식을 전환하는 것을 보면서 좀 고민이 되었다.

이제 강의를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이 많아졌다.

배우는 걸 마다하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나이 60이 넘으면서 기술과 관련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요즘은 즐겁지만은 않다.

새로운 기술을 익혀서 쓸 만해지면 또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필요한 기능만 배워도 숨 가쁘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도 온라인으로 신청하기 어려워 주민센터를 찾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거나(물론 나라에서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지급해 주는 게 맞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하나를 사고자 할 때도 기계 앞에서 주문하는 게 두려운 50플러스 세대가 적지 않다.

대형마트도 기계 앞에서 골라온 물건을 스스로 결제하도록 바뀌었다.

이미 일상이 인공지능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변화의 속도를 급속하게 바꾸어버렸다. 50플러스 세대로서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마련한 디지털문해교육은 나를 비롯하여 새로운 변화의 물결 앞에 서있는 50플러스 세대에게 분명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상희나 경화, 그리고 나.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시간을 나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상희가 문득 ‘노인이 된다는 게 두려워진다’고 했다.

우리 중에 가장 활기찬 상희가 이런 말을 하다니, 조금 놀랍기도 했지만 곧 공감했다.

70세까지는 이런저런 일을 하겠다고 생애 계획을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70세 이후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눈앞으로 다가온 노년의 시간, 나이 듦도 배워야 하는 건가.

 

 

 

2018년에 출판된 책 <100세 수업>(EBS 다큐 제작, 김지승 글)에는 우리가 모르는 100세인들의 이야기이자 미구에 닥칠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00세들의 사사로운 일상에서부터 알기 어려운 속내까지 노인에 대해 폭넓게 다룬 이 책은 100세 노인의 하루 일과와 나이 듦으로 생기는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살필 기회를 준다.

또 노인이 되면 왜 자기 말만 하고 아무리 말려도 하던 일을 놓지 않는지 알려주며, 노인도 인정투쟁을 한다는 등의 내용은 노인이라 그렇다는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 준다.

심리 전문가들은 노인이 일을 놓지 않는 이유가 생존의 이유를 그 일을 통해 인정받는 것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과연 100세까지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100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얼마만큼인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막연하기만 했던 노년의 모습에 대해 조금은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게 된다.

 

EBS에서 방영한 현장 탐사 보고서<100세 쇼크>의 작가 김미수 씨는 <100세 쇼크>를 시청한 뒤로 자신의 아버지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동양화가인 아버지는 몸이 불편해지면서 마치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작업을 멈추고 붓이며 물감 등 화구를 몽땅 치웠다.

그러던 아버지에게 방송이 다시 붓과 종이를 꺼내들게 했다.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미국인 화가 타샤 튜더 이야기도 마음을 끌었다. 그는 환갑을 앞둔 나이 58세에 농장을 사서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꾸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 92세에 생을 마쳤다.

미국의 국민화가라 불리는 그랜마 모지스는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2018년에 출판된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 가을 겨울>은 강원도 산골에 사는 97세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 모음집이다.

이들은 누구나 늙어가지만 남은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근사하게 보낼 수 있음을 보여준 ‘노인 되기’의 바람직한 롤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떻게 늙을 것인가 고민하는 노인을 위한 활동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가요교실, 사교댄스, 생활공예 등 소일을 위한 것들 위주라 아쉬운 감이 있다.

이제는 하루 중 단 몇 시간을 투자하는 소일거리를 넘어 100세 시대에 맞춘 은퇴자들의 인생 재설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혼자서 알아가고 갖추기는 어렵다.

부디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나이 듦에 대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지역별 50플러스센터에서 그 지역 특색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나 다른 사람들과 좋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면 막연하고 두려웠던 노인의 시간을 보다 지혜롭게 보낼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