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문학나눔 1차 도서 87권이 새로 들어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북 코디네이터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는 50플러스들은 어떤 책을 골랐을까요?
새책 가운데 북 코디네이터가 고른 6권의 독후감을 나눕니다.
아래 소개된 책들 모두 서대문50플러스센터 사이도서실에서 대출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타일』 / 김금희 지음 / 2022년 / 창비 펴냄
사이도서실에 ‘23년 문학나눔 도서가 들어왔다. 어떤 책을 먼저 읽을지 뒤져보다가 선택한 책이 김금희 작가의 연작소설인 『크리스마스 타일』이다. 읽을 책을 선택할 때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곤 하는데, 이 책 말미 저자의 말이 눈에 들어와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소설을 내놓을 때마다 늘 혹독한 이별을 겪는 듯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그리며 글을 적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내가 아니라 소설을 읽어줄 분들을 통해 『크리스마스 타일』 속 인물들이 더 씩씩하고 멋지게 세상 속으로 근사하게 섞여들 것만 같다.
그렇게 해서 맞이할 모두의 겨울에 평화가 있기를, 각자가 완성한 크리스마스 풍경들이 그 각자의 이유로 가치 있게 사랑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서서히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퀼트 이불을 만들듯 한 땀 한 땀 7편의 이야기들을 엮어 만든 연작소설이다.
때론 무지하게 외롭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한 날들을 보내지만, 이 또한 지나가는 일임을 알기에 소설 속의 그녀들을, 혹은 그들을 위로해 본다. 현실의 우리들 사연 또한 말이다.
2023년의 뜨거운 폭염과 들이붓듯 퍼부어 대던 장마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는 게 휴식인 독자분들이 한여름에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폭염을 식히기 바라며….
글 임영신 2023 북 코디네이터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선임 지음 / 2022년 / 다산책방 펴냄
평소 단편보다는 장편에 손이 가는 편인데,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단편 소설의 재미가 이런 것이었군!”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정선임 작가의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 이야기의 첫 몇 줄을 읽으면서 등장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상황을 짐작해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찌나 각양각색인지 말이다.
몇 작품만 간단히 소개해 본다면 이렇다. 「우리가 우리였던」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던 고모와 고모의 연하 동거남과 그들의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이다. 고모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함께 살던 그 젊은 남자는 고모의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그는 고모가 살던 집에서 조금만 더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이 키우던 고양이와 함께 머무르다 그 고양이가 죽자, 비로소 그 집을 나오게 된다. 나는 그의 부탁으로, 그를 데리고 고모의 묘소로 가서 그 앞에 고양이를 묻고 그가 고모와 고양이를 애도하게 해준다. 사실 고모 생전에 우리 셋은 자주 어울렸었다. 세상 사람들이 시선에서 고모와 그의 관계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진정 자유로웠다.
또 다른 단편 「구부린 마음」도 상황 설정이 흥미롭다. 주인공은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서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를(아이돌 사인회인지, 새로 연 식당인지 모를) 긴 줄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그리 친하진 않았지만 기억 속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닮은 여자의 부탁으로 우연찮게 자리를 대신 맡아 오도 가도 못하고 그 줄에 서 있게 된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그 여자는 도무지 오질 않고 주인공은 하염없이 무엇을 위한 줄인지도 모른 채 서 있다. 처음 줄을 섰을 때는 햇살이 따가웠는데,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새로 줄에 들어오고, 어떤 사람들은 포기하고 나간다. 주인공은 계속 서 있다. 목덜미에 뜨거운 햇살을 느끼며 나도 함께 서 있다.
「귓속말」의 주인공 대수는 청력이 좋지 않아 보청기를 착용하는 택시기사다. 어느 날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캄보디아 청년이 방에서 사망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뒷수습을 하게 된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캄보디아 청년을 집으로 데려온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아들, 그리고 죽은 캄보디아 청년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오간다. 동시에 보청기를 켜고 끄는 것은 그가 세상과의 소통을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중요한 장치다.
이 소설집 속 다양한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중심부에서 벗어나,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 소외된 사람들이다. 잠시나마 내가 이 사람들이 되어 보는 경험은 생소하지만 흥미롭다. 작가는 어째서 이 이야기에 이 제목을 붙이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이얼을 돌려 그 시간 그 장소로 여행하는 것.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단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임의의 시공간으로 순간 이동하는 것이다.
글 최정윤 북 코디네이터
『그렇게 할 수밖에』 / 최도담 지음 / 2022년 / 네오픽션 펴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인내심. 적정한 때를 포착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 그것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봄날」은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엄마의 재혼으로 잠깐 함께 살았던 새아빠 이기섭의 살인을 의뢰한 것이다.
“착오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의뢰는 실패했습니다. 당신이 의뢰했던 대상이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받은 수수료 중 일부를 돌려드리려 합니다.”
살인을 의뢰했던 강라경 앞으로 온 편지로부터 이기섭의 죽음과 관련해 진실이 밝혀지는 시간들이 안타깝다. 엄마를 폭행하는 이기섭, 그에게 성폭행을… 눈앞에서 엄마의 자살을 본 열한 살 라경은 할머니 손을 잡고 정신과 진료를 보러 다녔다. 의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을 꺼내놓을 수 없었던 어린 라경. 언어를 감춤으로써 자신을 숨기면서 그 시간을 견뎌냈다.
20여 년간 묵묵히 십자수를 두는 것으로 삶을 견디며, 엄마처럼 세상을 등지지 않을까 생의 순간들을 두려움과 싸웠는지도 모를 할머니!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손녀의 삶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할머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웠던 라경!
할머니의 십자수 작품은 할머니가 마법처럼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그 이야기를 통해 할머니 입장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의 슬픔이 흘러간 방향이 나의 목적지와 같았다는 라경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강라경 삶에 응원을 보낸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을 잃었을 때 찾아온다. -『그렇게 할 수밖에』 108쪽에서.
십자수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월을 훌쩍훌쩍 뛰어넘을 것 같다.
할머니의 메시지를 읽어내면서 남은 생을 견뎌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같은 책, 120쪽에서.
시간을 통과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시간 속에 잠겨 있을 때는 볼 수 없는 것들.
시간이 어느 지점에 내려놓아야만 들여다볼 수 있는 것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구불구불한 작은 길을 걷고 또 걷는 것이다. -같은 책, 182쪽에서
글 김기수 북 코디네이터
『담장의 말』 / 민병일 지음 / 2023년 / 열림원 펴냄
난 담장을 참 좋아한다.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은 벽을 다 덮지 않고 네모난 구멍을 운치 있게 살려가며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특히 담쟁이덩굴이 올라가는 담장을 보면 많은 느낌이 든다. 단단한 벽을 타고 가야 하는 고단함이 슬프기도 하고. 서로서로 응원하면서 같이 가는 따뜻한 위로가 있고, 서로 경쟁하듯 매달려 있는 초록빛 잎사귀들을 보고 있으면 삶의 에너지,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어릴 적 다니던 교회는 작은 하얀 건물에 온통 담쟁이덩굴이 가득했다. 봄이 지나고 더운 여름이 오면 그 푸르름과 싱그러움이 더해지면서 어찌나 이쁜지 그 생각만으로도 맘이 따뜻해지고 미소 짓게 된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담장이는 나에게 말을 건다. 그 시절의 나에게 또 지금의 나에게 잘살고 있다고 또 잘살았다고….
책에서 작가는 담장을 자연과 음악과 미술을 이어주고, 자기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간간이 나오는 담장 사진들은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갯마을 담장에는 바닷가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있다. 때론 집과 집, 공간과 공간 사이를 경계 지어 주기도 하는 담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을 만들어 존재에 대한 명상을 하게도 한다.
내가 본 노을 중 가슴 벅찬 기억이 있는 순천의 끝자락 와온 바다 풍경 이야기와 햇빛을 수집하는 섬달천 마을 주변의 담장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작가가 본 그 풍경들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마치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돌로 흙과 숨으로 빚은 담장은 사라지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다른 형태의 담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대 간의 담장, 계층 간의 담장 각자만의 서로 다른 경계의 담장.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현무암으로 쌓아 놓은 담장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봄에는 검은 현무암 담장에 노란 유채꽃을 항상 떠올린다. 하지만 요즘 제주도에도 높은 건물들이 생기면서 담장이 사라지고 있다. 아쉽다.
책을 읽는 동안 때로는 프랑스 여행도 하고, 유명 화가의 작품도 감상하며, 클라리넷 연주 들을 수 있는 힐링의 시간. 어릴 적 담장 밑에서 소꿉놀이 하던 친구도 만나는 추억의 시간. 담장이 들려주는 말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밖은 장맛비가 내리지만 향긋한 커피와 함께 담장의 이야기로 감사한 시간이다.
글 한경미 북 코디네이터
『백석과 보낸 며칠간』 / 김왕노 지음 / 2022 / 천년의시작 펴냄
시는 곧 시인이다.
‘누구는 시집을 찢어 똥을 닦으므로 / 똥구멍도 눈이 있는지 / 똥구멍으로 시를 부드럽게 읽었다는데 / 나는 똥구멍으로 시를 낳는다.’ -「시를 누다」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김왕노 시인의 시에는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에 관해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근원적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새카맣게 말라 가는 미라 / 폐휴지 리어카를 끌고 간다. / 헝클어진 머리 초점 잃은 눈으로 / 악착같이 리어카를 끈다. … 맞바람을 맞아 더 힘겨워진 그녀 / 이 시대 치부같이 드러난 그녀 / 복지국가란 현수막이 신나게 / 바람에 휘날린 지도 반세긴데 / 그녀에겐 폐휴지 리어카로 갈 / 희망고물상만이 필요하다.’ -「미라」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미라’ 같은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딸, 누구의 할머니, 누구의 친구, 누구의 아내, 이웃이 존재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이 ‘미라’ 같은 분들과 두 손 맞잡고 악수 나누는 정치인들은 왜 정치가 필요한지 진정 고민해 보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행태를 벗어나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게 늘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김왕노 시인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의 연장선에 사회를 이루는 근간인 우리의 가족 이야기도 하고 있다. 특히 부모님.
‘구르는 돌은 슬프다. 구르는 돌은 자리 잡지 못했고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지만 이끼가 돌에게 천년 갑옷, 따뜻한 옷인 걸 알아 더 슬프다. … 아버지도 세상에 구르는 돌이었다. 구르며 자식 목구멍에 풀칠한다며 좌로 우로가 아니라 좌익도 우익도 아닌 채 이념도 없이 천지 사방으로 굴렀다.’-「구르는 돌은 슬프다」
우리네 부모님이 이렇지 않을까. 자신의 이념과 꿈을 뒤로 한 채 그저 쉬지 않고 구르고 굴러 자식들을 위해 치성을 드리며 생을 살아오시지 않았을까. 그 천지 사방으로 굴러온 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구르지 않아도 천년 갑옷을 입고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등불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의 말씀 애장터에 묻듯 / 어둠에 묻어 버린 날은 / 옆구리에 창 맞은 짐승처럼 울었습니다. // 번역하려 해도 끝내 번역되지 않는 / 불립문자 같은 아버지의 말씀 / 입 안에서 오래 벼르다 낸 말이나 / 나에게 고리타분한 말이었습니다. // 바람 부는 세상에서 비로소 내게 튼튼한 / 바람벽이 아버지 말씀이란 것을 / 겨우 알아챈 날 묻었던 아버지 말씀 / 햇감자처럼 어둠서 캐내며 울었습니다. // 너무 미안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었습니다. // 시방 나는 아버지 말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 가슴에 새기고 / 바람 속에 참죽나무 한 그루로 섰습니다.’-「불립문자」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의 불립문자 같은 말씀을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이제야 하나도 그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죄송함에 몸서리쳐 본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가곤 했는데 어머니와 외가는 내가 세상을 따뜻하게 보고 올곧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시인 역시 「백석과 보낸 며칠간」에서 외가의 따뜻함을 아련하게 떠올리고 있다.
‘초저녁이면 안팎 마당이 그득하니 /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 북쪽제비들이 씨글씨글 모여서는 쨩쨩쨩쨩 / 쇳스럽게 울어대는 백석의 외가라면 나는 / 사과꽃 환했던 함흥 내 외가를 떠올리는 것 / 내가 백석과 보낸 며칠간은 아나키스트도 / 공화국도 당국도 중앙도 없고 세상도 없고 /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밤에 /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 고개를 / 여우난골을 이야기하는 백석만 있는 것 … 백석과 보낸 며칠간 가난한 내 영혼에서 / 볍씨 같이 싹 트던 맑은 눈’ -「백석과 보낸 며칠간」
시인은 백석 시의 따뜻함과 외가에서의 기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맑은 눈을 가지게 된 듯하다. 고등학교 교사 시절 백석의 시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내 제자들은 백석의 시를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 혹여 수능과 내신 때문에 시를 음미하지 못하고 표피만 본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네들 역시 시를 통해 맑은 눈을 가졌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나 역시 맑은 눈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참죽나무처럼 살아가고 싶다.
글 조미례 북 코디네이터
『조용한 외출』 / 박미윤 지음 / 2022년 / 한그루 펴냄
아들들을 양옆에 앉혀놓고 고등학교 시절 이미 탐독한 『은하철도 999』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목청껏 같이 주제가를 불렀던 때가 있었다. 돈이 없던 철이는 공짜로 기계 몸을 준다는 말에 메텔이라는 묘령의 여인을 따라 은하철도 999라는 기차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가는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계 몸을 가지게 된 인류는 「당신의 유토피아」에서 중앙 시스템으로 명명되는 컴퓨터의 접속을 받으며 가상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 「당신의 유토피아」는 박미윤 소설집 『조용한 외출』 속에 나오는 단편 중 하나다.
중앙 시스템은 인간 육체에 최소한의 기능만 남겨놓고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모든 기관을 통제한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인간들을 제 1,2구역에 모아 중앙 시스템의 정해진 궤도 내에서 움직이게 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편안하게’ 공급한다. 중앙 시스템에 복종하지 않거나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3구역으로 쫓겨나 최소한의 시스템(지극히 정상적이고 인간적인)만 제공받는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자동 접속해주는 중앙 시스템은 물질적인 편리함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편리함(?)까지도 공급한다. 그곳에서 노래는 음표 높낮이로 생기는 음들의 집합, 여성은 엑스와이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남자의 정자를 공급받아 수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미 컴퓨터가 많은 것을 편리하게 해주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편리하게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모호한 감정이라고 애매하게 정의한 컴퓨터는 ‘자유’라는 단어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제 3구역의 검은 망토 인간은 ‘자유란 보육을 기계에 맡기지 않은 엄마’라고 표현한다.
‘은하철도 999’가 레일을 타고 광활한 우주로 흔들리며 빨려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았을 때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아이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넓고 넓은 우주로 날아가는 기차를 타도 무섭진 않을 거야 하면서.
우리는 누구의 편리함과 영원함을 위해 기계 인간이 되고 싶은 걸까. 점점 거대해 가는 컴퓨터와 AI의 존재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언제까지나 영원할까.
자판을 두드리며 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뜨악하게 느껴진다. 다음번엔 하얀 종이 위에 손으로 또박또박 써보고 싶다.
덧붙이자면 미국 하이테크 기업의 거물인 저커버그는 딸이 13세 때까지 페이스북을 금한다고 했다. 구글의 순다 피차이는 아들의 유튜브 이용 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글 황은아 북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