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 인문학 사잇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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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면, 지금은 그 반대다. 거리 두기가 절로 되는, 한적한 곳이면 무조건 좋다. 이런 때 역사 공부도 하고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망우리공원은 거닐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이 있다. 치유의 숲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망우리 공원. 태조 이성계가 자신이 묻힐 동구릉을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넘으며 이제야 근심을 잊었구나.”라는 말을 남기면서 망우리(忘憂里)’ 고개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지명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망우리공원은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도 새겨보고 문화 인물, 예술가 그리고 민초들까지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름답게 가꿔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근현대사 유명 인물들이 잠들어 묘역을 만난다. 공원 내 5.2km 사색 길은 아람의 나무가 빼곡하고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원만한 곡선의 길이 예뻐 어느 계절이나 걷기에 그만이다. 철철이 피는 갖가지 꽃들이 화원을 이루어 묘지가 있는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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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묘와 망우리 공원에 안장된 독립지사 및 예술인들의 명단

 

망우리공원에는 유관순 열사 합장 묘역이 있고 소파 방정환, 사학자 오세창, 시인 만해 한용운, 정치인 장덕수, 조봉암, 우두의 지석영, 문일평,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김말봉, 작곡가 채동선, 오빠의 원조 가수 차중락 등 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유명 인사가 잠들어 있다. 문화계 인사와 애국지사들이 고이 잠들고 있어 역사 기행이나 문학기행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예술인의 마음이 흘러서일까. 망우리공원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는 묘역은 한용운 시인, 이중섭 화가, 이인성 화가, 방정환 선생, 권진규 조각가, 계용묵과 김상용 소설가다.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 선생처럼 지조로 자신을 지키고, 몸소 실천했던 분도 없을 것이다. 만해가 태어난 홍성 생가와 만년에 기거했던 심우장은 알아도, 만해가 망우리 시민 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3.1운동 때 33인 중에 한 사람이고 일생을 저항문학에 앞장선 분으로, 안타깝게도 해방을 눈앞에 둔 1944년 눈을 감고 만해 선생은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망우리공원 관리사무소를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내려가면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연보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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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이중섭 선생의 묘소

박인환 시인, 이중섭 화가, 한용운 시인 등 문화계 인사와 애국지사들의 영혼이 묻혀 있어 역사, 문학, 예술 기행으로도 손색이 없다. 망우(忘憂), 이름 그대로 근심을 모조리 잊게 된다. 5.2km 순환길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은데 경사가 완만한 곳부터 걷게 되기에 부담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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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우사색의길과 망우리 사잇길로 안내하는 표지판

이야기가 피어날 것 같은 인문학 사잇길로 걸음을 옮겼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삶이 고단할 때 묘지공원에 가보는 건 어떨까. 죽은 자들의 고적하고 말 없는 세계를 돌아보면서 집착과 욕망을 덜어내는 것도 괜찮지, 싶다. 망우리공원을 거닐면 세상사 고민이 걷히고 걷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숲 산책은 망우리 고개에 있는 체육시설을 갖춘 저류조 공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는 뾰족한 피라미드 모양의 탑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13도창의군탑이다. 1907년 전국 13도에서 모인 1만 명의 의병들이 일제의 본거지인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이곳에서 혈전을 벌였다. 비록 중과부적으로 패했지만, 나라를 구하려는 의병들의 애국정신이 깃들여 있기에 세운 군탑이다. 꽃향 가득한 계단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사색의 길의 시작인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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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파 방정환 선생의 묘소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 노동위원장이다. 나라의 주권이 도적의 발굽 아래 짓밟혀 강산이 통곡할 때 이 땅의 유일한 희망을 어린이로 보았다. ‘애들’, ‘애놈이라는 말을 어린이로 고쳐 부르게 했고, 어린이에게 평생 존댓말을 사용하며 그들의 인격을 존중했다. 거기다 동화를 쓰고 어린이 잡지를 만들었고 어린이날을 제정한 분이기도 하다. 민족주의 사학자이신 문일평 선생, 또 오세창 선생은 추사의 글과 그림을 감식하고 정리하는데 큰일을 해냈다. 금석학의 대가였으며 육당 최남선, 위당 정인보 선생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대통령 후보였던 죽산 조봉암 묘비에는 지금도 비문이 비어 있다. 59년 진보당 사건에 간첩 혐의로 사형된 후 창령 조씨 문중에서 지금까지 비문 제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52, 56년 대선 때 이승만과 맞서 200만 표를 얻어 선전한 것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진보당에 붉은색을 입힌 것도 모자라 죽산을 간첩 혐의로 잡아들여 사형을 선고해버렸다. 술 한 잔 달라는 마지막 소원도 거부한 채 교수대에 세워 죽였다. 역사를 재평가해 선생의 이력과 철학이 비석에 가득 채워지길 바랄 뿐이다. 다음 망우리를 찾을 때는 술이나 한 병 사 가지고 가 부어주며 마지막 유언을 들어줘야겠다.

 

아차산까지 종주를 해도 좋으나, 용마산에서 하산하면 바위 절벽에서 떨어지는 세 개의 인공폭포인 용마폭포가 기다리고 있다. 50m에서 떨어지는 시원스러운 물줄기만 봐도 가슴이 짜릿하다

 

친절한 여행 팁

순환로 5.2km는 사색의 길이라고 해서 시민들이 산책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선각자들의 삶을 그려보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공원 일주를 해도 좋고, 용마산을 지나 아차산까지 능선을 타고 가면 고구려 보루와 아차산성 유적지를 접하게 된다. 그곳에서 광나루로 하산하면 된다. 참고로 망우리공원 관리사무소 앞에 무료로 차량 50여 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에서 버스로 20, 7호선 상봉역에서 5분이 소요된다. 구리 방향 시내버스 2226, 2227, 2228, 2229, 2232, 9201, 9205번 타고 망우리 고개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해 망우 저류조 공원을 지나 시민공원으로 계단 길을 오르면 된다

 

 

50+시민기자단 김경희 기자 (bomsky6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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