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에서 만나는 역사의 발자취와 의미
-
▲ 서울 효창공원
「서울 효창공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독립지사와 애국선열을 모신 호국보훈의 성역(聖域), 휴식과 놀이 공간이자 생태 학습장인 근린공원, 대규모 체육시설 등이 어수선하게 혼재된 기묘한 공간 집합체가 서울 효창공원이다.
▲ 서울 효창운동장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는 이 터에 묘를 조성하면서 효창묘(孝昌墓)라 하였는데(1786년), 고종대에 효창원(孝昌園)으로 격상되었다가(1870년), 묘는 일제강점기에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으로 이전하고(1944년) 효창공원이 되었다.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왕세자, 왕세자빈, 왕 부모의 무덤을 원(園), 일반인의 무덤을 묘(墓)라고 한다.] 오늘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동영, 조성환, 차리석 선생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잠들어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찾으면 안장하려고 가묘를 만들어 놓았다. 공원 내 시설로는 백범김구기념관, 의열사(義烈祠)와 효창운동장, 대한노인회 건물 등이 자리 잡고 있다. (51,800평의 효창공원은 묘역만 국가 소유이고, 나머지는 서울시와 용산구 소유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효창공원의 고단한 역사를 시간순으로 따라가 보자. 정조는 아들 문효세자가 5살에 세상을 떠나자 무덤을 궁궐 가까운 곳에 두려고 했다. 그래서 풍수적으로 명당자리인, 소나무가 울창하고 한강이 보이는 언덕에 묘소를 조성하였으니 지금의 효창공원 자리다. 정조는 「효성스럽고, 번성하라」라는 의미로 「효창(孝昌)」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왕실의 묘역이었던 만큼 송림(松林)이 우거지고 그만큼 인적도 드물었다. 이후 효창원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의 숙영지로, 독립군 소탕을 위한 비밀 작전기지, 병참기지로 사용되었다. 1921년에는 경성 최초의 9홀 규모 골프장이 만들어져 운영되기도 하였고, 일부를 공원화하여 위락시설을 짓고 벚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외래 식물들을 심어 유원지로 바꾸었다. 1940년 조선총독부는 이곳을 일반인이 드나들게 효창공원으로 지정했다.
해방되고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을 순국한 독립 열사들의 묘소로 사용키로 하고 1946년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 3인의 독립운동가 묘소를 조성했다. 1949년 7월 5일에는 국민장을 치른 김구의 유해도 안장되었다. 1960년에는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2만7천㎡(8,360평) 규모의 효창운동장이 개장되어 제2회 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를 비롯한 많은 경기를 치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이 축구장 건립에 거세게 반발하자 백범 묘소를 이장하여 운동장을 짓는 대신, 묘소 바로 앞에 짓게 했는데 15만 그루의 나무를 베고 연못을 메워 건설하였다고 한다. 왜 효창공원에 운동장을 지어야 했는지에 관한 판단은 논외로 하더라도 효창운동장만큼 효창원의 부지는 축소되었고, 성역화된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1969년에는 백범 묘역에서 북쪽으로 30m 떨어진 곳에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이 건립되었다. 독립운동가 묘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해방과 6.26 전쟁, 극심한 이념 대결과 조국 근대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빚어진 정치∙사회적 혼란상을 효창원도 비켜 갈 수는 없었던 것 같다. 60~70년대 고도 성장기를 맞아 개발 광풍이 불면서 1972년에는 대한노인회 중앙회 건물과 대한노인회 서울시 연합회 건물이 지어져 또다시 성역을 훼손하고 말았다.
1990년에는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이,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등 7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열사가 공원 중심부에 만들어졌다.
2002년 10월 22일에는 백범김구기념관(지하 1층 지상 2층, 총면적 9,750㎡)이 개관되었는데 자주, 민주,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백범 김구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숭고한 애국선열들의 묘소에서 반려견과 운동이나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 시끌벅적 운동선수들이 들락거리는 효창운동장, 그 앞에 차량으로 가득한 주차장, 주변의 각종 음식점, 인근 실외 골프연습장까지 효창공원의 정체성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훼손된 측면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꿈꾸던 독립유공자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추모하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할 때가 되었다. 시민의식과 역사적 안목도 크게 확장된 만큼 시설과 공간의 재정비는 물론, 유흥공간 내지 동네공원쯤으로 여기는 모순적 인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식민지 시대,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 시대 등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훼손되고 변형되었던 곡절 많았던 효창공원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재조성하고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소」로 거듭나도록 해야만 할 사명이 후손인 우리에게 있다.
[글/사진 : 50+시민기자단 4기 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