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리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서울혁신파크 안 피아노 숲의 울창했던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쓸쓸함이 배여 들었다.

겨울의 초입에 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는 세 편의 옴니버스 영화 <그리다>를 상영하였다.

<그리다>는 분단으로 인한 아픈 가족사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의 고통과 슬픔을 담아내고 있어

이 계절 감성과도 잘 맞아 들었다.

 

상영전, 한국영상자료원 김승경 연구원의 영화 해설이 있었다.

 

“JSA, 의형제, 용의자,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는 많았습니다.

<그리다>는 그런 상업적인 영화에서 보던 북한군, 북한 사람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단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비록 영화 미학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제작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독립영화로서 이런 소재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영화 <그리다> 작품 해설을 하고 있는 한국영상자료원 김승경 연구원

 

 

“이게 뭐라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즐겨먹던 평양냉면을 앞에 두고 상범이 하는 말이다.

 

1편 <평양냉면>은 실향민 아버지를 가진 아들의 이야기이다.

남한으로 내려와 새 가정을 꾸렸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상범은 원망하며 살아왔다.

하긴 아버지가 실향민이라고 해서 실향민의 감정을 아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다.

아버지가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낸 사실을 알았을 때 울고 있던 엄마 옆에서 상범은 부르짖었다.

“이럴 거면 왜 내려왔어요!!” 이 한 마디가 그 가족이 겪는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망 신고를 마친 날, 상범은 아버지가 즐겨 찾았던 뒷골목 평양냉면 집을 찾는다.

그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와서 자주 먹었던 집이다.

이 밍밍한 평양냉면이 뭐라고.

냉면 그릇을 앞에 두고 원망과 회환이 함께 담긴 상범의 눈빛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실향민이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아들의 눈빛이므로.

 

▲ 냉면 그릇을 마주하고 있는 상범 (출처: 네이버 영화)

 

 

2편은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이다.

주인공 상경은 이산가족 찾기 프로젝트에서 이산가족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1.4후퇴 직후 헤어진 남편을 찾는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된다.

행복했던 신혼 시절의 추억을 가득 안고 남편을 그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상경은 얼마 전 헤어진 여자 친구를 떠올린다.

‘가나다’처럼 순서가 있는 관계 속에서 주인공과 그의 여자 친구는 멀어져 버렸다.

헤어진 할아버지를 혹시 찾더라도 “날...알아볼까?” 하며 말끝을 흐리는 할머니도 옛날 그렇게 다정했지만 지금은 아주 멀어진 관계를 걱정하는 것이다.

영화는 ‘멈춰버린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 이산가족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상경 (출처: 네이버 영화)

 

 

아버지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며 살았어요

 

3편 <림동미>는 아버지를 북한에 두고 온 새터민의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 엄마와 탈북하여 한국에서는 임동미로 살고 있다.

어린 림동미가 새터민에 대한 편견이 강한 남한에서 서른이 된 어른으로 성장하여 직장인 임동미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행복한 결혼을 앞둔 그녀에게 북한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다는 남자가 찾아온다.

그녀의 인생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훅 들어온다.

아버지를 애써 기억에서 묻으며 살았던 그녀는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에 괴로워하며 아버지를 남한으로 모셔오려고 애쓴다.

그런 주인공이 마냥 안쓰럽다.

우리 주변에 많은 새터민의 애환을 대변하는 듯하다.

 

 

▲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의 소매를 잡고 있는 동미 (출처: 네이버 영화)

 

 

분단 이후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분단은 이산가족들에게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과 고통을 주었다.

실향민들에게는 고향에 갈 수 없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안겨주어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산가족 생존자는 6만여 명(통일부 이산가족 정보 통합시스템 2017)이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탈북한 사람만 해도 3만여 명(통일부 북한이탈 주민 입국 통계 2017)이 되어 새로운 이산가족, 실향민이 생겨나고 있다.

 

영화 <그리다>는 우리 곁에 여전히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전쟁위기론이 고조되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극적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고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

내일(11월 30일)은 ‘유라시아 철도의 꿈’을 내딛기 위해 남북 철도 조사를 위한 첫 발을 내딛는 날이다.

신의주와 두만강까지 2천 600km 철길을 달리는 대장정에 다선 다고 한다.

평화 정착, 경제 협력 모두 반가운 소식이다.

그에 못지않게 먼저 할 일은 많은 이산가족들이 하루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힘써야 하지 않을까?



[글/사진 : 50+시민기자단 김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