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거
나무가 나이를 먹으면 가로로 나이테가 는다. 성보현 화가의 ‘레드 RED’를 보면 달리 생각하게 된다. 한 해의 시간이 벽돌(?) 하나가 되어 나이테가 가로로 넓어지는 게 아니라 세로로도 쌓인다는 것을. 그만큼 성숙해지는 게 나이 먹는 거라고. 지난 10월 마지막 주 양천리 갤러리에서 본 개인전 ‘만나다’의 작품을 ‘물색그리다’ 정기회원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작가를 찾아 물었다. 좋으시냐고? 그녀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중 어떤 만남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해요. 늘 나 자신보다 주변을 우선시했던 보현이가, 인생 중간에서 우연히 샘을 만나고 그림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개인전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내내 행복을 느꼈습니다. 샘, 그림, 그림 벗을 만난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다.
▲ ‘레드 RED’ 작품을 성보현 화가가 소개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 양천리 갤러리에서 열린 성보현 작가 개인전 ‘만나다’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서울혁신파크에서 마지막 수채화전
가는 봄을 놓지 않던 ‘양천리 갤러리’, 올해가 가면 더 이상 볼 수 없다
서울혁신파크 양천리 갤러리. 옛 질병관리본부 경비실이 갤러리로 바뀐 흥미로운 곳이다. 매주 수채화 커뮤니티 ‘물색그리다’의 회원인 마을 화가가 개인 전시회를 여는 공간이다. 작품이 매주 바뀌어 작가의 다양함으로 인해 살아있는 곳이라 느꼈다. 그래서 필자에게 작은 기쁨을 선물하던 곳, 힐링을 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를 방문할 때, 부러 동선을 바꿔 작품을 보려고 들러 머물던 곳이다. 그들의 변화와 그림의 깊어짐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던 곳이 이제 사라진다. 매주 기쁨을 선물 받았는데 내년부터 어디서 좋아라 할 수 있을까.
참고로 서울혁신파크는 2015년 사회혁신플랫폼으로, 은평구 시민들의 쉼 공간으로 다가왔다. 이곳에 서울시는 거주 단지를 조성한단다.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은평구청은 서울시립대 유치 등 인프라 개선을 추진하고 있었다. 다툼이 있겠다. 주민들은 개발 가능한 대규모 부지에 추가로 아파트나 주택단지 짓는 것에 회의적인 반응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다.
▲ 경비실에서 변신한 양천리 갤러리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 지난 6월, 물색그리다 회원의 양천리 갤러리에서 야외활동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SHALL WE PAINT?
물색그리다 10주년 제8회 정기회원전, 그림은 공용어
그래서 서울혁신파크 상상청의 마지막 전시가 될 ‘물색그리다’ 정기회원전이 11월 26일(토)까지 열린다. 은평 수채화 커뮤니티 ‘물색그리다’는 은평구에서 수채화로 행복을 그려가는 그림 동아리다. 그림으로 만나는 나, 함께하는 그림 친구, 나누는 마을 화가의 미션을 가지고 활동한다.
정기회원전은 격년 주기다. 작년에 열었으니 2023년에 전시해야 하는데, 상상청이 사라질 예정이라 계획했던 초대전 대신에 올해도 정기전을 연 거다. 전시 작품은 물색그리다 회원뿐 아니라 각자의 방에서 빛나는 소중한 아이들이 더 빛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름 ‘소우주’의 발달장애 청소년 5명도 함께 했다. 더불어 물색그리다 동호회 회원과 그림친구인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수채화 수업반 ‘모들화방’도 참여했다. 각자의 개성을 나타냈다. 잘 그리려 하지 않고 기교 없이 솔직한 시선과 느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뿐 아니라 재미있는 ‘화석(?)’ 작품도 있다. 10년 전 서양화가 서애란 강사와 첫 전시에 참여한 이들의 그림을 모은 곳이란 안내자의 설명이다. 서애란 화가는 “손주와 같이 그림 그리는 할머니 멋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함께 시작했단다.
▲ 서애란 샘 작품과 하단의 그간의 포스터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 전시장 내부 풍경과 순번으로 돌아가는 안내 당번 옆모습 ⓒ 물색그리다
전시 준비는 행복이다
물색그리다 마을 화가 모두가 품앗이해서 정기회원전을 준비했다. 지난 11월 1일부터 5일까지 그림을 걸 가벽을 세우고, 그 위에 초배지를 발랐다. 관람자의 눈높이에 맞춰 그림을 걸 자리에 못질과 작품 설치까지. 전시 준비 스케치를 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몇 번 방문해봤지만, 필자를 제외하곤 남자가 안 보였다. 남녀공학과 여대의 여학생 능력은 다르다고 했던가. 전시 준비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버거워 보이지 않았다.
행복감을 주는 행동은 걷기, 말하기, 먹기, 놀기라 한다. 일상에서 늘 하는 행동이지만 제대로 하는 게 있을까! 마을 화가들에겐 물색그리기 활동과 작품 전시를 위한 모든 행동이 행복감을 주는 거란 생각이 갖게 한다.
▲ 가벽에 초배지를 바르는 물색그리다 회원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 전시 준비 품앗이를 한 뒤 점검 회의 중 미소를 머금은 이들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축제’, 대표 강사 서애란 화가의 한마디
“마치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즐기듯이 전시 준비를 했습니다. 추억하기 위해 그렸고, 나만의 뮤즈가 된 장소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의 실력을 뽐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내 이야기를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말하려고 그림을 내다 걸었습니다. 천천히 보아주시고 그림의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서애란 화가, 물색그리다 대표 강사의 전시 소개말이다.
기획과 주제가 간결하게 정리된다. “SHALL WE PAINT?”라며 환하게 웃는 그녀가 아름답다.
▲아름다운 샘 서애란 대표 강사. 참 잘 웃는다. 이쁘게 환하게.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Opening에 공연이 빠질 리 없다.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해금연주 동아리인 ‘해노리’ 커뮤니티(대표 조진희 베로니카)가 연주를 했다. 조진희 대표도 물색그리다 회원이란다. 다섯 명의 연주자는 정태춘, 박은옥의 ‘봉숭아’로 시작해 솔로 연주곡 ‘바람이 전하는 말’로 마쳤다. 조용필 노래가 생각나지 않았다. 연주를 들은 관람객이 마지막 곡 이름이 뭐냐고 해노리에 물어왔다. 그만큼 느낌이 달랐다. 해금 연주를 찾아 들어보시길 강추한다.
▲ 해금연주 동아리 해노리의 전시 축하 연주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 솔로 연주를 하는 모습을 조진희 대표와 관람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전시장을 돌던 필자는 중학생이던 순간을 떠올렸다. 막 전학을 간 중1 가을, 생소한 곳에서의 첫 미술 수업. 수채화를 그리던 내 손을 감싼 후 함께 농도를 묽게 덧칠하며 다른 느낌을 갖도록 하시던 미술 선생님 생각이 났다. 지금 선생님을 만나면 아르쉬 중목(HOT PRESS)에 바다처럼 파란 울트라마린 블루가 번지는 그림을 함께 그려보고 싶다. 비기너 반에 신청해볼까? 서애란 샘은 “그림 그리는 할아버지 멋지지 않아요!”라고 말한 적 없지만… ^^;
50+시민기자단 김인수 기자 (kisworld@naver.com)